[역경의 열매] 유이상 (22) 믿음·소망·사랑으로 ‘누구와도 법적 다툼 않는다’ 원칙 지켜

단동주영삼업유한공사 마당에 사훈을 적어놓은 비석. 믿음 소망 사랑을 뜻하는 신(信) 망(望) 애(愛)가 새겨져 있다.


내게 전화한 북한 여성은 자신이 나를 만나려는 게 아니라 조선족을 도와주는 중국 관리가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말을 전했다. 약속을 잡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인 관리가 전해 준 얘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믿고 일을 맡겼던 조선족 직원에 대한 얘기였다. 중국 공장 건축, 평양 온실 사업, 중국에서의 물품 구매, 만수대 창작사 그림 등등 그에게 일임해 놓은 모든 일이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져 있었다.

북한과 중국에서 진행되던 사업과 관련해 모든 비리가 탄로 나자 그 조선족 직원은 잠적하고 말았다. 이 일로 북한과 중국 내 사업에 대한 적잖은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되돌아보면 어떤 이들은 나와 관계를 맺으며 경제적인 수익이 좀 생기고 더 큰 수익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기도 했으며 일을 부풀리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경쟁이 생기기도 하고 서로를 배신하는 일도 있었다.

후에 내막을 전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들 중 누구도 고발하지 않았다. 사업을 하면서 누구와도 법적 다툼을 벌이지 않는다는 게 내 원칙이었고 이 원칙은 조선족이거나 중국인이어도 그대로 적용했다. 그때 알게 된 사람이 박남수씨였다. 옌볜에서 경찰서 과장을 지내고 러시아에서 철강 수입업을 했던 그는 자수성가형 사업가였다. 하지만 나를 만났을 당시엔 하던 일이 잘못돼 한국으로 유학 보낸 딸의 결혼식에도 가보지 못할 상황이었다.

동생 친구가 근무하던 단둥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던 박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매우 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박씨 표정이 눈에 선했다. 나는 그에게 연락해 딸의 계좌번호를 물어 예비 신랑의 양복값과 예물 마련에 필요한 돈 일부를 송금해줬다. 아버지로서 딸을 향한 안타까움을 읽었기 때문이다.

당시 잠적한 조선족 직원 때문에 사업적으로 뒷마무리가 필요한 시점이라 믿고 맡길 사람을 찾아야 했다. 내 판단에 박씨가 그 일을 맡기에 최적이었다. 결국 그에게 기회를 줬다. 박씨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게 나의 몫이었다. 성장하고 성공을 이루면서 그 역시 믿음을 배워갈 것이라 믿었다. 그가 어떻게 일하고 결정하며 돈을 쓰는지 묵묵히 지켜봤다. 심지어 장부 열람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일의 결과를 확인하는 의미에서 보고서를 받는 정도였다. 그런 믿음에 화답하듯 박씨는 모든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며 중국 사업장을 견고하게 다져갔다.

박씨는 그 후 주영삼업유한공사 대표로 세워졌다. 미리 내다보고 결정한 일은 아니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국 현지를 방문하기 어려웠을 때 박씨가 없었다면 사업에 큰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이 또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을 것이다.

일을 맡겨놓고 의심을 하면 어떤 일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 의심할 바에는 일을 맡기지 않아야 한다. 단둥의 주영삼업유한공사 입구 초석에는 신(信) 망(望) 애(愛)가 새겨진 돌판이 있다. 믿음 소망 사랑을 뜻한다. 하나님을 모르던 그들을 하나님이 세우고 이끌어가는 회사로 인도했으니 그들을 신뢰하고 밀어주는 게 내가 할 일이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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