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마다 월드컵 시즌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이목을 붙잡는 게 있다. 승패를 예측하는 각종 점술의 등장이다. 월드컵 점술가의 대명사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문어 ‘파울’이었다. 독일의 한 박물관에 살던 파울은 모든 독일 경기 결과와 스페인 우승까지 정확히 예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땐 코끼리 ‘넬리’와 거북이 ‘빅헤드’가,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는 고양이 ‘아킬레스’가 그 자리를 대신했는데 파울만큼 신통치 못했다.
중동에서 열리는 첫 대회이니만큼 이번 카타르월드컵에선 ‘샤힌’이라는 이름의 낙타가 등판했지만 조별 예선부터 완전히 빗나갔다. 대신 일본에서 ‘타이요’란 이름의 수달이 독일전 2대 1 승리를 예언해 깜짝 스타가 됐고, 두바이에 사는 펭귄 ‘토비’는 월드컵 역사상 최대 이변이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르헨티나전 승리와 점수까지 맞혔다.
우리나라에서도 월드컵 점술이 큰 화제다. 개막 한 달 전에 공개된 유튜브 영상에서 한 무속인은 파울루 벤투 감독의 사주팔자 신점을 통해 한국의 1차전 무승부, 2차전 패배, 3차전 승리를 점쳤다. 이게 모두 적중하자 사람들은 이 영상을 찾아보는 걸 ‘성지순례’라 칭하며 신기해한다. 비록 한국팀이 8강 이상 진출할 거라는 점사는 틀렸지만 축구팬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이젠 승부 예측에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까지 동원된다. 게임업체 EA는 ‘하이퍼모션2 테크놀로지’를 개발해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브라질을 꺾고 우승한다고 내다봤고, 스포츠 데이터 기업 옵타의 슈퍼컴퓨터는 브라질의 우승 확률을 15.79%,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는 12.53%와 11.82%로 예측했다. 선수들의 연봉, 스폰서, 나이 등을 고려한 보험가액 데이터를 통해 2014년과 2018년 우승팀을 연속 적중한 영국 로이드사는 잉글랜드를 올해 우승팀으로 점쳤다. 하지만 지금까지 결과만으로도 모두 정확한 예언에는 실패한 셈이다.
그런데 월드컵은 점술뿐 아니라 각종 종교적 이미지와 언어가 난무하는 이벤트가 되고 있다. ‘도하의 기적’ ‘알라이얀의 기적’ 등 예상치 못했던 한국의 16강 진출을 기록하는 표현이나, 가나전에서 막판 추가 골 부족으로 탈락한 우루과이팀의 결과를 과거 상대와의 악연을 소환해 ‘우루과이의 카르마(업보)’라 일컫는 해외 유력 언론 기사에서도 도드라진다. 온갖 징크스에 전전긍긍하는 선수들의 모습에서는 경건한 종교성이 떠오르고, 시합을 앞두고 간절히 기도하는 양팀을 보면 과연 신의 응답은 어디를 향할까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한다. 하긴 월드컵 때만 되면 살아나는 국가에 대한 맹목적 애정 자체도 매우 종교적이다.
그렇다고 월드컵마다 출몰하는 점술, 무속, 예언에 호들갑을 떨거나 심각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대부분 진지한 주술적 관심이라기보다는 집단적 놀이에 가까우니 말이다. 이보다는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4년마다 반복해 확인한다는 점이 훨씬 더 의미 있다. 최고의 국제대회 앞에서 엄청난 중압감을 마주해야 하는 선수들,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로 묶여 그 중압감을 증폭시키는 대중이 함께 만드는 역동은 매우 종교적인 시공간을 빚어낸다.
사실 “공은 둥글다”는 축구 격언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어떻게든 내다보려는 인간의 욕망과 함께, 결국 한 치 앞의 예지도 불가능함을 깨닫는 데서 오는 무력감은 우리 삶의 원초적 자화상이다. 인간이 이런 존재임을 4년마다 전 지구적으로 되짚는다는 건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인간 존재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종교적 모멘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하긴 하다. 모레 밤 펼쳐지는 결승전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