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기독교인의 숫자는 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선 풍요로운 시대에 신의 존재와 신앙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국리서치가 지난주 발표한 2022년 종교인구 현황 조사 결과를 보면 개신교인이 전체 인구의 20%로 나타났다. 불교 신자(17%)나 천주교 신자(11%)에 비해 높은 비율이지만 전체 인구의 51%는 종교가 없다고 답했다. 각 교단이 집계하는 기독교인 수는 오래전 1000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세대의 복음화율은 더 참담하다. 청년층 복음화율은 3%로 미전도종족 수준이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연령대가 낮을수록 믿는 종교가 없다는 응답이 높아졌다. 종교가 없다는 응답이 60세 이상에서는 35%인 반면 18~29세에선 69%로 높아졌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도 모태신앙이긴 하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학창 시절 다윈의 진화론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의심했다. 예기치 않은 재난이나 전쟁으로 무고한 어린 생명들이 짓밟힐 때, 독실한 신앙인들이 병마에 시달리거나 고난을 당할 때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품은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간절한 기도에 응답받지 못할 때 사랑의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 의구심을 품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말을 오롯이 믿지 못했다.
얼마 전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참여했다.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지하 동굴에 있는 은색 별로 표시된 예수 탄생 지점을 보는 순간 전율이 느껴졌다. 내가 손으로 만지는 이 자리가 2000여년 전 예수가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옆에는 딱딱한 돌 구유가 놓여 있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가장 천하고 낮은 곳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보는 듯했다.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순례객들의 찬송이 울려퍼지는 작은 동굴은 성경이나 설교로만 접했던 예수의 스토리가 허구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곳이었다.
예수가 서른 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살았던 나사렛의 요셉 집터 지하동굴과 오병이어 기적을 행한 벳새다 들판과 갈릴리 등을 돌아보며 ‘살아있는 예수’를 만났다. 부유함과 교만으로 가득차 예수가 행한 많은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은 가버나움과 벳새다, 고라신을 꾸짖는 예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 11:21) 외식적인 바리새인들을 꾸짖고 당시 가장 낮은 계급인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돼주신 예수. 그러했기에 죄 많은 여인이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으며 감사를 표했을 것이다.
예수가 예루살렘 빌라도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뒤 가시면류관을 쓴 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었던 800m에 이르는 ‘비아 돌로로사(고난의 길)’는 2000년 전 아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십자가를 지고 걷다가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곳, 예수가 넘어지면서 손을 짚은 지점까지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의 처절한 고통이 전해졌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과 가슴에 칼이 찔린 마리아상은 처연한 슬픔을 자아내고 있다. 예수가 묻혔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 곳에 세워진 무덤교회와 하늘로 올라가신 바위 터에 위치한 감람산 승천교회는 2000년 전 실존했던 예수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이 없이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니라(누 18:17),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이렇게 생생한 현장을 보고도 안 믿겠느냐는 예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로 회심한 C S 루이스는 ‘피고석의 하나님’에서 (과거) 기독교는 자신이 병들었음을 아는 사람들에게 치료를 약속했지만 현대 불신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하려 할 때 어려움은 죄의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진단한다. 고대인은 피고가 재판장에게 가듯 하나님께 나아갔지만 현대는 역할이 뒤바뀌어 인간이 재판장이고 하나님은 피고석에 계신다는 것이다. 부와 명예, 권력을 좇으며 자신이 인생의 중심이 되다 보니 신은 버려지고 있는 게 아닐까.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