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기적 일상 성탄



딸과 어머니가 사무실에 찾아왔습니다. 담소를 나누는데 딸이 얼마 전 시청한 동영상 이야기를 꺼냅니다. 귀신 쫓는 내용이었습니다. 엄마가 그런 것 믿지 말라며 핀잔을 줍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하냐”며 묻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해 드렸습니다.

“저는 기적과 신비한 현상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런 강력한 체험에 사로잡힌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묵상하고 목회하면서 그런 일시적인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이 있다는 걸 알고 그걸 더 귀하게 여기게 됐어요. 우리는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기적과 신비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매일 보고 듣는 것을 ‘기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바로 기적이에요. 해마다 곡식이 땅에서 자라는 걸 보세요. 예수님이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은 신비한 기적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보다 더 큰 기적을 해마다 베푸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흙과 모래, 돌과 물에서 곡식과 과일을 만들어 내십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들풀과 꽃들도 먹이시고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세상을 먹이십니다. 이것이야말로 태초부터 시작돼 매일 우리 앞에 일어나는 기적 아닌가요.

하지만 우리는 이 일에 너무 익숙해서 이 놀라운 기적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창조주의 기적을 매일 지나칩니다.

하나님이 가끔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난 일, ‘기적’이라는 것을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그걸 보고 우린 특별하고 신비하다며 호들갑 떨지만 어쩌면 그런 기적은 하나님의 신비에 눈 감아 버린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변칙 수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죽하면 일상의 신비를 깨뜨려 오병이어 같은 일회성 기적을 일으키실까요. 여하튼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를 매일 온 세계에서 일어나는 기적 속으로 안내하십니다.

우리가 매일 대하는 밥 한 공기도 그래요. 밥 한 공기가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 하늘의 해와 달, 비와 바람, 농부의 땀과 눈물, 운반하는 이들의 노력, 시장의 상인들, 안전하게 상거래가 되도록 사회 질서를 담당하는 경찰과 국가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의 사랑과 수고. 이것이 모두 밥 한 공기에 담긴 우주의 신비이고 기적입니다.

이 모든 것 안에 일을 이뤄가는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일상이 범상이고 평범이 비범입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 잠자고 일어나는 것, 내가 숨 쉬고 눈을 뜨는 것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만나고 이해하며 대화하는 것, 모두 신비한 기적입니다. 그렇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의 신비가 가득 새겨진 성경 같아요.”

우리가 믿는 주님은 문자와 책에 갇히지 않고 교회라는 담장에도 갇히지 않으며 특별한 시간만 관리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은 창조 세계와 일상의 모든 시간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자리로 우리 시선을 돌립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신비는 우리를 ‘일요일’이라는 하루에서 6일의 평범한 날로 초대합니다. 이 선하고 복된 초대는 이 엄혹한 세계 안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성경 안에 살아있는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서 평범한 동네 베들레헴으로, 그것도 작디작은 아기 예수로 나셨다는 성탄이 코앞입니다. 신비가 일상으로 들어온 사건입니다. 교회당 문을 꼭꼭 걸어 잠근 채 벌이는 우리끼리 잔치 대신 일상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이웃과 더불어 삶의 조각을 나누는 평범하지만 신비한 성탄이 되면 좋겠습니다.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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