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은 고대 중국의 법전 ‘주례’에 처음 보인다. 사면 대상은 셋뿐이다. 어린이, 노인, 정신지체장애인. 이밖에는 감형이 있을 뿐 사면은 없다. 감형도 조건이 엄격했다. 모르고 저지른 죄나 실수로 저지른 죄 정도다. 다만 군주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은 감형해 준다. 불공평해 보이지만 이 역시 여덟 가지 경우에 한정했다. 군주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사면과 감형은 불가능했다.
이후 왕권이 강화되고 군주가 초법적 존재로 군림하면서 사면 원칙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라에 경조사가 있으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대규모 사면을 단행했다. 새로운 국왕이 즉위해서, 왕실에 혼사가 있어서, 세자가 태어나서, 왕실 어른이 환갑을 맞이해서,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전염병이 돌아서, 역모를 진압해서, 하여간 핑계도 가지가지다.
사면이 잦았던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나라의 경사를 백성과 함께하고, 한때의 실수로 죄를 짓고 반성하는 사람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사람도 풀려날 수 있다. 사면은 법의 한계를 고려한 보완 장치다. 하지만 법질서를 흔들고 법 앞의 평등을 무력화하는 독소 조항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지식인들이 사면을 문제 삼았다.
법가사상의 시조로 알려진 전국시대 관중은 “사면은 백성의 원수”라고 했다. 사면을 남발하면 법치 근간이 흔들리고, 그 피해를 입는 것은 선량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후한의 재상 오한은 임종을 앞두고 광무제에게 ‘신무사(愼無赦)’ 세 글자를 남기고 눈을 감았다. 신중한 태도를 지켜 죄인을 사면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면 폐단을 우려한 마지막 간언이었다. 수나라 대학자 왕통은 “사면이 없는 나라는 반드시 형벌이 공평하다”고 했다. 죄를 지은 자는 법에 따라 벌을 받는 것이 원칙이며, 사면은 그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말이다.
조선 지식인들도 사면에 비판적이었다. 성호 이익은 사면 혜택을 입는 사람은 대부분 권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사면은 군주가 인기를 얻으려는 술책”이며, “간사한 사람에게는 다행한 일이고 죄 없는 사람에게는 원통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다산 정약용은 사면 필요성은 인정하되 무분별한 사면을 막기 위해 등급을 나누고 제한을 정하자고 제안했다. 최소한의 원칙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군주의 사면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권력의 본질은 마음대로 상벌을 주는 권한이다. 사면을 제한하라는 말은 권력을 내려놓으란 말이나 마찬가지다. 통치자가 법 위에 군림하는 전제군주국가에서 사면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권한이다. 다만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법치주의 국가의 사면은 달라야 한다.
연례행사로 자리 잡은 특별사면이 어김없이 논란이다. 명분은 국민 통합이지만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비리 정치인들의 사면이 국민 통합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사면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주장도 옹색하다. 사면이 합법적 권한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도, 느슨하게 적용하는 것도 합법이라는 점이다. 합법은 권력자가 제 맘대로 휘두르는 무기이며 ‘법잘알’의 탈출구다. 먼지털기식 수사도 합법적이고, 봐주기 수사도 합법적이다. 합법적으로 기소를 뭉개는 것도 가능하고, 합법적으로 판결을 미루는 것도 가능하다. 이 모든 합법적 행위가 사법 신뢰 추락과 정치 혐오의 요인이며, 그 주범은 원칙 없는 사면이다. 제동을 걸어야 할 야당은 사면권 행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커녕 또 다른 누군가를 사면복권하라는 요구뿐이다. 합법이라는 핑계를 이용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다.
장유승(성균관대 교수·한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