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새해 시무식에서 찬송가를 불렀다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자기 신념의 핵심인 종교를 드러내는 게 뭐 그리 문제냐고 억울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론은 공사 구분에 실패한 공인이라며 호되게 꾸짖는다. 2일 열린 시무식 일을 5일에야 한 신문이 처음 보도한 걸 보면 뒤늦게 언론 레이더에 잡힌 모양인데, 다른 언론사들도 후속 보도를 이어갔으니 세속사회가 설정한 종교 규범 위반 사례임을 확인한 셈이다.
이 뉴스를 듣고 이찬혁의 노래 ‘장례희망’이 떠올랐다. 2013년 ‘케이팝스타’에서 우승한 남매 듀엣 ‘악뮤’의 오빠 찬혁이 작년 10월에 낸 솔로 앨범 ‘에러’에 실린 곡이다. 교통사고로 생사를 오가다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는 설정의 이 앨범은 타이틀 ‘파노라마’를 포함해 11곡으로 짜였는데, 마지막 트랙 ‘장례희망’은 자신의 장례식에 모인 이들을 향한 이야기를 담았다. 오르간 반주와 일렉트릭을 곁들인 장르에서 가스펠 코러스로 전환되는 후렴구는 이렇게 노래한다.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찬양해.”
선교사 자녀로 알려지긴 했어도 대중음악을 하겠다는 스물여섯 젊은 뮤지션에게 이렇게 짙은 종교색은 과감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희망하는 장례식 풍경도 범상치 않다.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묘사도 생생하다. “오자마자 내 몸집에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
대중 반응은 나쁘지 않다. 지나치게 종교를 앞세워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오히려 가사 내용에 호기심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공수처장의 찬송가와는 뭐가 다른 걸까? 사뭇 맥락 자체가 다르긴 해도 개인의 종교심을 드러내는 데 따르는 규범이 점점 더 까다로워지는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에러’는 가수·작곡가로 인정받아온 찬혁의 지난 10년이 응축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간 ‘컨셉충’ ‘GD병’ 등으로 호명되며 상업적 성공 공식에만 매몰되지 않았던 그는 솔로 앨범 발표를 전후해선 아예 작정하고 각종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시내 한복판에 끌고 온 소파에 앉아 태연히 커피를 마시고, 관객과 카메라를 등지며 노래를 부르고, 음악방송 공연에선 이발도 했다. 호불호는 갈리지만 “찬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밈도 생겼다. 대중 반응에 노심초사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자기 이야기를 내놓기 시작한 아티스트로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그래서 낯선 종교색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대중문화의 상투적 흐름을 거스르게 만든 동력을 여기서 찾아보려는 궁금증도 엿보인다.
또 찬혁의 종교 드러내기는 무례한 신앙 강요와는 다르다. ‘장례희망’은 이렇게 말한다. “땅 위에 단어들로는 표현 못 해. 사진을 못 보내는 게 아쉽네.” 자신이 신앙하는 바를 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아쉬움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유한한 방법으로는 설명이 불가함을 쿨하게 인정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거의 들리지 않을 듯한 목소리로 “내 맘을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쉽네”라 읊조리는 부분에선 예의 ‘예수천국 불신지옥!’과는 다른 조심스러움이 묻어난다.
공수처장의 찬송가는 청자를 이해하지 못한, 이해하려 하지 않는 종교의 오만을 상징한다. 게다가 자기 위치와 권력의 무게도 헤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반면 찬혁의 ‘장례희망’은 긴 호흡으로 쌓아온 찬혁과 대중 사이의 신뢰, 그리고 상호 존중이 만들어냈다. 이게 전제되지 않은 종교 드러내기는 거부되기 쉽다. 예민한 감각이 요청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꼭 앨범 전체를 들어보시기를 권한다. 못다 한 얘깃거리가 참 많다.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