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부활 이후 승천하시기까지 40여일간 제자들에게 살아계심을 보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다. 무엇보다 이 기간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이 어떻게 당신을 가리키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읽고 깨우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분부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미 많은 것을 배웠기에 충분히 준비됐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기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필요한 건 그분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삶에서 기다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기다리는 시간은 인생에 없어도 좋았을, 무의미하게 허비되는 시간처럼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기다림은 단 한 순간도 무의미하지 않다. 하나님은 긴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우리를 당신의 증인으로 준비시키시기 때문이다.
모세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낼 지도자로 준비되기까지 40년 세월을 광야에서 보내야 했다. 모세가 무의미와 마주했던 그 긴 시간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모세의 인간적인 힘을 완전히 빼는 시간이었다. 혈기로 가득 찼던 젊은 날 자신의 힘으로 백성을 구하고자 했을 때 모든 일이 어그러지고 말았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아무 가치를 느끼지 못할 때 오히려 하나님은 그를 불러내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증인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다림의 시간을 허락하신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들은 온전히 성령의 능력으로만 증인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더 기다리고 있으면 성령이 곧 임하시리라는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예수님께 여쭸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이 이때입니까.” 예수님의 의도와 달리 그들의 초점은 살짝 빗나가고 말았다. 제자들은 오랜 세상의 역사가 드디어 종말을 맞이하는 것인지가 더 궁금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미래의 때와 시기에 관심을 두지 말라고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만 속해 있기 때문이다. 대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 분명하고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신다. “너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앞날을 생각하기보다 바로 지금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사명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할 때 자신들의 기대와 한계를 뛰어넘어 땅끝까지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지 알고 싶어 하지만 주님은 그것을 감춰 두신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일상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앞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야말로 감춰진 시간이다. 그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만 같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준비시키고, 우리가 생각하거나 기대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을 이뤄가신다.
벌써 2023년의 둘째 달을 맞이한다. 연초의 부푼 기대와 소망과 달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또 반복되는 매일의 일상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는 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순간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오늘이라는 감춰진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우리의 매일이 되길 소원한다.
송태근 삼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