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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중 목사의 선교적 삶] 선교적 삶이란 무엇인가



오늘 한국교회는 세상 사람에게 칭송을 받던 초대교회 성도와는 달리, 사회에서 적잖은 비난과 지탄을 받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는 성도들이 신자다운 구별된 삶을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도란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이다. 거룩한 백성이란 세상 사람과는 ‘구별된 존재’라는 의미다. 우리가 이 구별됨을 잃어버린 것이다. 즉 한국교회가 세상과 다름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과 구별됐던 초대교회 성도는 오히려 세상 사람에게 칭송을 받았다.(행 2:47)

호주 신학자 마이클 프로스트는 ‘세상을 놀라게 하라’는 책에서 초대교회 성도가 사회 각 분야에 스며들어 궁금증을 유발하는 삶을 살며,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초대교회 성도는 몸소 친절한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은 진심으로 원수를 사랑했으며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용서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들도 풍족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음에도 굶주리고 가난한 자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줬다. 이런 초대교회 성도의 삶은 당시 사회에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저들은 도대체 누구지” 하며 물었다. 이 물음이 커졌고 사회 전체는 이들의 삶에 영향을 받게 된다.

실제로 초대교회 성도의 이런 삶의 영향력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기독교를 엄청나게 핍박한 로마의 율리아누스 황제(AD 331~363)는 기독교인이 로마 제국을 장악할까 봐 두려워했다고 프로스트는 전한다. 초대교회 성도는 그야말로 로마가 깜짝 놀랄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구현했다. 이들의 구별된 삶은 로마 사람에게 충격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초대교회 성도의 이런 삶을 본 세상 사람은 “당신들이 믿는 신앙 체계는 무엇이길래 우리와 이렇게도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사람들의 이런 질문에 초대교회 성도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교훈과 삶을 본받아 사는 사람들”이라고 답했다.

이런 답변은 오늘 우리 기독교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과 삶으로 증거하는 사명을 지닌 사역자다. 그러므로 성도는 삶의 구체적 현장인 가정과 학교, 일터에서 사역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성도의 진정한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현장에서 증거하는 것이다. 즉 선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선교적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선교적 삶’이란 예수를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갖고 사는 것을 말한다. 선교적 삶이란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거룩한 하나님 나라가 되도록 만드는 데 헌신하는 삶이다.

우리의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선한 양심을 갖고(벧전 3:21) 세상 사람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자. 이 어두운 세상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밝히는 삶을 살자. 사람들은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볼 때 우리 가운데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어올 것이다. 사람들은 또 “당신은 왜 그런 바보 같은 삶, 손해 보는 삶을 사느냐”고 물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우리는 이들에게 참 소망이 되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증거할 수 있다. 이것이 앞서 소개한 초대교회 성도의 삶의 모습이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할 선교적 삶의 모습이다.

(주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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