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 자리에서 늘 있는 일이다. 내 연구 관심사는 세속 미디어가 종교를 다루는 방식이라고 소개하면 항상 이런 기대 섞인 질문이 따라온다. “어떻게 하면 교회에 대한 세상의 오해를 풀고 기독교의 진심, 참모습을 알릴 수 있을까요? 여기에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의 기저에는 한국교회를 비판적으로 그리는 미디어에 대한 짙은 서운함과 더불어 효과적인 미디어 활용법만 익힌다면 세상의 부정적 인식도 단숨에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자리한다.
그런데 어쩌랴. 미디어가 부리는 이런 ‘마법’은 관련 현상을 연구하는 학술 체계가 미처 확립되기 전에야 통용되던 얘기이고, 미디어의 영향력이란 언제나 사회적 맥락과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만 설명된다는 걸 알기에 별 뾰족한 답을 줄 수 없어 난감할 따름이다. 하지만 종교를 다루는 여러 미디어 현상을 탐색하면서 얻은 나름의 결론이 있긴 하다. 교회의 미디어 활용을 위한 비결이라면 비결이겠다. 그건 미디어는 세상과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종교를 반긴다는 점이다. 세상의 대세를 거스르는 이야기 말이다. 미디어는 세상과 같거나 비슷한 모습의 종교에는 별 관심이 없다. 아니, 종교가 세상과 차이가 없다면 오히려 실망하고 호되게 비판한다.
왜일까? 나는 종교가 현 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위한 상상의 원천이 돼주기를 바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본다. 그간 관찰한 흥미로운 점 하나는 미디어가 종교를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사회의 현실에 대한 비관적 평가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깊은 절망도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현실과는 다른 대안적인 삶의 형태와 내용을 종교나 종교인에게서 발견하기라도 하면 미디어는 칭찬에 인색하지 않다. 비관적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더 나은 세상’의 실마리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학자 헨리 젠킨스는 사회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요소로 ‘시민권적 상상(civic imagination)’을 꼽는다. 현실에 대한 절망만으로는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더 나은 세상, 즉 보다 공평하고 정의롭고 민주적인 삶을 향한 구성원들의 집단적 상상이 있어야만 사회 변화를 견인할 동력이 만들어진다. 그는 또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시민권적 상상에 중요한 원천으로 기능한다고 주장한다. 대중이 영화, TV 드라마, 대중음악에서, 최근에는 게임이나 앱, 가상현실에서 더 나은 세상의 면모를 발견하고 이를 시공간적으로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을 모색했던 수많은 사례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
미디어가 바라는 종교의 모습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종교는 절망적 현실을 바꿀 대안적 상상을 가능케 할 때 비로소 사회의 기대에 부응한다. 대안적 삶의 방식을 드러내고, 실제 그렇게 살아가는 개인과 공동체의 모델을 보여주는 걸 말한다. 혐오의 시대에 환대를, 이해득실의 시대에 양심을, 이익 추구의 시대에 희생과 손해를 우선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돈으로 설명되지 않는 게 없는 현실에서 물질로는 환산 불가능한 것의 가치와 중요성을 일깨울 때 훌륭한 상상의 원천으로 기능한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절망적인 현 질서에 대한 저항적 상상을 위해 끌어다 쓸 자원을 제공하는 종교에 미디어는 환영하고 또 환호했다.
이게 무슨 비결이냐는 반문도 있겠다. 그러나 어쩌랴. 마법이나 비결은 아닐지 몰라도 교회가 끈질기게 좇아야 할 푯대임은 분명하다. 불가능하거나 너무 어려운 것 아니냐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기독교 역사에서 아니 짧은 한국 교회사만 봐도 상상의 원천으로 사회 변화에 기여한 선례는 차고 넘치니 말이다.
박진규(서울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