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독교 성지순례지를 방문했다. 이집트 시나이반도 시내산 일대와 이스라엘이었다. 시내산은 9년 전 발생한 한국인 순례객 버스 테러로 여행 제한 지역이었으나 지난해 8월 여행 경보가 완화되면서 다시 여행길이 열렸다. 아직 많은 사람이 찾지는 않지만 점차 그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출애굽’ 루트는 기독교 성지순례 여행의 출발점이 된다. BC 1446년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를 떠나 홍해를 건넌다. 이후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로 내몬다. 그렇게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을 받는다. 언약은 모세가 받은 십계명 돌판에 새겨져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한 혹독한 수업을 받는다. 성경은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인도하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입성한다.
오늘날 성지순례객들은 출애굽 여정을 따라가면서 성경 내용을 복기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굳건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다짐한다. 성지순례는 이렇게 시나이반도와 이스라엘, 요르단 등 성경의 배경이 됐던 땅을 직접 밟고 느끼면서 신구약성경이 말하는 메시지와 지혜를 오감으로 경험하게 한다.
매년 1월부터 3월까지는 성지순례 최적기로 꼽힌다. 이스라엘의 경우 섭씨 7~18도 사이를 유지하는 데다 1년 중 유일하게 비가 오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비가 오기에 간혹 무지개도 볼 수 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땅에서 만나는 무지개라니. 노아의 홍수 이후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무지개 약속’을 다른 곳도 아닌, 이른바 성지에서 볼 수 있다면 창세기 구절은 더 감동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성지 여행의 적기라 할지라도 안심해선 안 된다. 그만큼 온 세상 순례객이 몰려오기에 제대로 된 성지순례를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갈등 속에 있다. 이·팔 갈등의 현장을 눈앞에서 접할 수 있다. 예수의 십자가 수난 길로 알려진 ‘비아 돌로로사’에서는 번잡한 시장과 상인들의 호객 행위에 순례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겨우 당도한 성묘교회 역시 개신교인에겐 매우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교회 건물의 복잡한 구조도 그렇고 다른 기독교 교파들이 각자 영역을 놓고 경쟁하듯 하는 모습, 그리고 개신교인에겐 너무나 생소한 미사 의식과 기념 장식 등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지순례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3단계를 언급한다. ‘예습-체험-복습’이다.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 방문할 장소와 관련 성경 구절을 충분히 읽고 숙지한다. 유튜브 영상으로 미리 가보는 것도 유익하다. 현지에서는 예습한 내용을 떠올리며 성경의 땅을 경험한다. 그리고 거기서 펼쳐진 사건들을 반추하며 교훈을 찾는다. 가이드에게 성지순례의 모든 것을 맡긴 채 기념사진만 찍고 올 수는 없다. 예습과 현장 체험을 했다면 돌아와서는 보고 들은 것을 되새기며 신앙을 더 깊게 해야 한다.
개신교인에게 성지순례는 이슬람교의 하지 순례가 아니다. 일생에 한 번 실천해야 하는 신앙 의무도 아니고 구원과도 전혀 관계가 없다. 성지는 또 거룩한 땅도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지구 모든 곳, 우리 각자가 서 있는 이 땅이 성지다. 십자군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십자군은 성지를 거룩한 땅으로 여겼기에 역설적으로 거룩하지 않은 이교도에 대해 대학살의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물리적 장소에 대한 집착은 피해야 한다. 예수는 이미 2000년 전 이를 분명히 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1~23)
신상목 미션탐사부장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