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일가는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손을 대지 않은 곳이 없다. 때와 장소는 물론이고 물불도 가리지 않았다. 최순실이 있는 곳엔 항상 박근혜가 그림자로 존재한다. 대통령의 위엄도, 권위도 체면도 다 내팽개친 박근혜는 무엇 때문에 최순실과 한 몸을 자처했을까. 박근혜가 정권을 잡은 다음엔 청와대는 물론 정부조직도 이들의 사금고를 채우는 도구로 전락시켜 권력을 사유화했다.”
지난 27일 LA에서 강연회를 가진 민주당 안민석 의원(4선)의 저서 ‘끝나지 않은 전쟁-최순실 국정농단 천 일의 추적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안 의원은 탐사전문 주진우 기자, 돈세탁 추적 전문가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등 일명 ‘독수리 5형제'팀을 꾸려 독일을 5차례나 찾아가 최순실 해외 은닉재산의 실상을 파헤쳤다. 강연에서 안 의원은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40여 년에 걸친 부정축재와 해외 은닉재산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최순실의 은닉자금을 따라갈수록 그 의혹이 고구마 줄기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끝이 어디인지, 얼마나 많은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직•간접적으로 국정농단에 동원되거나 관련된 인물은 국내외 통틀어 300~400여 명에 이르고 기업만 해도 페이퍼 컴퍼니까지 합치면 1000개도 넘어 보인다.”
최순실은 독일 은닉재산 문제를 제기한 안 의원에게 “찾을 수 있으면 찾아서 가져라”며 큰소리 쳤다고 한다. 그만큼 철저하게 숨겨놓았으니 절대로 찾아낼 수 없을 것이란 자신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 의원은 독일 페이퍼 컴퍼니 전문가 ‘가바리스'의 결정적 도움을 받아 최순실의 페이퍼 컴퍼니가 400여 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최순실 일가는 최태민 사후 최순득·최순실·최순천이 재산을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지금은 정유라·정시호·장승호 등 3대로 계승되고 있다. 수천 억에서 수조 원으로 추정되는 최순실 일가의 재산이 대대로 증여된다면 국정농단과 그 처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젠가 다시 불사조처럼 부활할 것이다.”
안 의원에 따르면 최순실 일가의 해외 은닉자금은 독일은 물론 헝가리,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스위스 등에도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심지어 미국 LA도 돈세탁 창구로 의심되는 인물이 있다며 향후 조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순실 일가는 국내 조사를 피하기 위해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해산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거쳤으며 여기에 연루된 수백 개의 회사명과 수백 명의 관련자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안 의원은 수십년에 걸친 최순실 일가의 행태를 ‘국가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 가족사기단'으로 규정하고 최씨 일가의 부정 재산을 몰수하는 특별법을 제안한 상태다.
그러나 이 법안에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김성태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반대하고 있어 국회 상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산을 추적하다보니 마디 마디마다 최순실이 연결되어 있더라는 말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반의 반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거대한 악의 뿌리는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여러분의 깨어 있는 의식만이 정의를 세울 수 있습니다.” 최씨 일가의 은닉재산을 이 정도 밝혀냈으면 검찰이 나서야 하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안 의원은 한숨을 쉬었다.
의회·사법부·행정부에 수십 년에 걸친 최태민 일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부정재산 환수는 보수와 진보를 떠난 정의의 문제다. 최순실 일가의 부정 축재 은닉재산은 반드시 몰수되어야 한다. 관련법 제정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최순실 부역자란 오명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를 사유물 삼아 거대한 축재를 한 ‘가족사기단'을 그대로 방기하면서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