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아부하며 상고법원 관철하려는 거나
별건으로 전임 대법원장을 적폐로 몰아가는 과정은
법원이 정치화된 나쁜 사례
사법부는 민주성이 아니라 공정성을 생명줄로 삼아야
개인적으로 검찰과 법원 중 어디를 더 신뢰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주저 없이 법원이라고 답해 왔다. 권력 안팎에서 정치 검찰의 실상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질문을 받으면 망설여질것 같다. 법원도 검찰 못지않게 정치화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최근 법원 사태를 보면 이를 사법개혁의 진통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법원 내 정치 갈등의 표출로 봐야 할지 얼른 판단이 안 선다. 법원은 법원별로 판사회의를 열어 지난정부 법원행정처의 부적절한 문건들에 대한 사후 처리를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그 문건들 중에는 아무리 대법원장이 참조하라는 ‘말씀자료’이고 상고법원을 관철하기 위한 기관 차원의 전략이라 하더라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그렇게 권력에 아부하면서까지 상고법원을 하고 싶었을까 싶다. 법원이 정치화된 나쁜 사례라 하겠다.
한편 특별조사단이 개인 컴퓨터까지 털어 조사했으나 정작 블랙리스트는 찾지 못하고, 별건을 폭로해 전임 대법원을 적폐로 몰아가는 과정도 다분히 정치적이다. 해당 문건들이 재판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재판 결과를 취합해 청와대 듣기 좋게 말하려 한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 삼기는 어렵다는 특조단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 여부를 둘러싸고 법원은 둘로 쫙 갈라졌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법원 내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는 모양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대법원장이 정치적으로 눈치 보기를 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문제다.
사법부는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자유는 법률의 보호를 받아 처음으로 성립한다. 남의 자유를 해치지 않고 내 자유를 최대한 누리려면 법 말고는 기댈 언덕이 없다. 법원이 그 마지막 버팀목이다. 법원이 하는 재판의 생명은 공정성이다. 최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들의 사법부 판결에 대한 신뢰도는 27.6%에 지나지 않았다. 국민 다수가 법원 판결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법부 위기의 본질이다.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의 문제와 별개로 재판이 정치 성향에 좌우되고, 여론을 의식해서 판결하며, 재판부에 따라 판결이 들쑥날쑥하다는 국민들의 비판을 판사들은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판결은 정치나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헌법과 법률이 정한 대로 법리와 증거에 의해서만 이뤄져야 한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장치가 법관의 독립성이다. 사법 권력을 행사하는 법관은 입법기관의 대표자처럼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는다. 대신 특별한 법률적 지식을 갖추고 주관적 편향을 제어하도록 훈련받은 전문가들을 발탁하고, 헌법으로 그 독립성을 보장해 준다. 공정성을 위해 독립성을 부여한 것이지, 법관들의 배타적 지위를 보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독립성이 있는 게 아니다.
이 원칙 뒤에는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절묘한 결합이 자리한다. 공화주의는 권력자의 전제적·자의적 지배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따라서 공화주의의 기본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권력의 질주 본능을 제어하기 위해 전문화된 조직들이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갖추도록 한 것이 3권 분립이고, 그것이 근대 공화주의 체제의 핵심 원리다. 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가장 정교하게 설계한 것이 미국의 헌법이다. 이를 기초한 제임스 메디슨은 정치권력의 질주가 국민들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을 막기 위해 사법부의 독립성이 갖는 특별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방법이다. 여기서는 다수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민주주의 차원에서는 다수의 의지를 얻기 위한 이념과 이익의 다툼이 폭넓게 허용된다. 하지만 법원은 이념과 이익의 다툼장이 돼서는 안 된다. 법원의 존립 근거인 공정성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화주의의 핵심 기관이면서도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약간 비켜서 있는 것이 사법부인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 경계에 서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한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여론과 이념에 의존하지만 공정한 법의 심판과 집행은 여론과 이념에 대해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사법부는 민주성이 아니라 공정성을 생명줄로 삼아야 한다. 사법부 내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을 도모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만 이것이 법원 내 정치를 일상화하는 것이라면 경계해야 마땅하다. 법을 천직으로 삼는 곳에서 법률적 판단이 아니라 정무적 판단에 따라 편이 갈려 갑론을박하는 이 상황은 ‘법리적인 풍경’이 아니라 분명 ‘정치적인 풍경’이다. 정치를 하는 법원을 믿으라고요? 그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박형준(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