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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천지우] 쿠데타의 새벽



혼자 읽기 아까울 정도로 흥미진진한 옛날 신문기사가 있다. 5·16군사정변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한 경향신문의 르포다. ‘대한국민 현대사’(고경태 지음, 2013)에 실린 장문의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2시50분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기자는 한강 인도교 앞에서 헌병의 제지를 받아 차를 돌린다. 그 순간 다리 남쪽에서 요란한 총성과 함께 무수한 총탄이 날아오는 것을 목격한다. 황급히 몸을 피한 뒤 경비전화로 경찰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으나 자기들도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때까지는 쿠데타 상황인 줄 몰랐던 기자는 ‘군인들끼리 싸움에 이렇게 심한 총질을 하다니’라고 생각하며 일단 기사를 쓰려고 가까운 용산경찰서로 향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강 다리에서의 상황은 쿠데타 선봉인 해병대가 김포에서 서울로 진격하다 헌병들과 벌인 총격전이었다. 해병대 1개 중대가 곧 용산서에 들이닥친다. 군인들이 총을 겨누며 경찰서 문을 차고 들어가자 경찰관들은 혼비백산해서 건물 위층으로 달아났다. 기자는 이때서야 쿠데타임을 직감했다.

경찰관들은 무장해제를 당했고 지나가던 차량은 바리케이드용으로 징발됐다. 서른 살 남짓 돼 보이는 중대장(대위)은 기자의 신분을 확인한 뒤 “안심하시오. 이젠 다 끝났소. 백만 명이 동원됐소”라고 말했다. 흥분한 상태여서인지 중대장의 말은 과장이 심했다. 백만 명 동원은 말이 안 된다. 실제로는 3750여명 규모였다. 기자가 다른 군에서도 가담했느냐고 묻자 중대장은 “그렇다”며 “조금 후에 항공기가 서울 상공을 날고 인천 앞바다에 함정이 도착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역시 허풍이었다.

어쨌든 중대장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어떤 정당이나 단체의 조종에 의한 것이 아니고 불안정한 이 나라 정세를 바로잡자는 구국의 일념에서 나온 것이며, 군부가 정권을 잡아 이 나라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중대장은 발뒤꿈치에 총탄을 맞아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병원에 가자는 부하들의 권고를 물리쳤다. 그는 기자와 굳게 악수하면서 “우리의 의도를 국민에게 잘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최근 나라를 시끄럽게 한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 문건 때문에 이 오래된 기사가 생각났다. 이 기사의 재미는 낯설고 비현실적인 상황이라는 데서 나온다. 군인들이 서울시내로 진격해 총질을 하고 경찰서를 무단 점령하는 게 57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가당한 일인가. 그토록 험악한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에 혀를 차며 기사를 읽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비현실적이고 아득한 과거가 바로 눈앞의 현실이 될 뻔했다. 기무사 계엄 문건을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결정 이후 시위 확산으로 사회혼란이 커지면 전국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다고 돼 있다. 이를 두고 여권은 “박 전 대통령과 그 호위세력이 친위 쿠데타를 계획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자유한국당은 “쿠데타 음모인 양 단정 짓지 말라”고 했지만, 문건에서 쿠데타의 냄새가 조금도 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군(軍)도 참 안 바뀐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단기장교로 군복무를 하면서 답답했던 것 중 하나는 부대가 무슨 계획을 세울 때마다 전년 계획을 복사하다시피 한다는 점이었다.

예년에 했던 것을 반복할 뿐, 매년 달라지는 게 거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여건이 바뀌면 이에 부합하는 변화가 있어야 마땅하지 않나.

기무사 계엄 문건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계엄선포문, 대통령 담화문, 포고문이 2017년용 문서 초안과 나란히 첨부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시절에 작성된 문건을 참고해서 2017년용 초안을 만든 것이다. 40여년 전 문서를 토대로 계획을 짜다니 구닥다리도 이런 구닥다리가 없다. 군이여, 눈치가 있다면 시대의 변화와 민의의 향방을 살펴서 대응하자. 언제까지 ‘구국의 일념’ 타령을 할 텐가.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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