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화와 세계화가 유일한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의 길이다.” 우리는 때로 이 명제에 반발하고 싶지만 글로벌 경제 체제가 워낙 공고해 보이기 때문에 선뜻 입을 열지 못한다. 그런데 40년 넘게 “지역화(localization)가 진정한 행복의 경제학”이라고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온 이가 있으니, 스웨덴 출신 환경생태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72)다. ‘오래된 미래’(1991)의 저자로 유명하다.
호지가 인도의 작은 마을 라다크에 체류하면서 세계화로 공동체가 파괴되는 모습을 기록한 ‘오래된 미래’는 전 세계 40여개국에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생태적 가치를 퍼뜨린 공로로 ‘제2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바른생활상과 고이평화상을 수상했다. 신간 ‘로컬의 미래’(남해의봄날)는 지역 중심의 경제공동체 회복이란 핵심 메시지를 사례를 중심으로 생생하게 전한다.
그는 14일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지구와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세계화 경제 모델은 여러 위기를 낳았다”며 “‘로컬의 미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전달하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여기에서 세계화는 기업화의 다른 말이다. 호지는 ‘허울뿐인 세계화’ ‘진보의 미래’ 등 전작에서 세계화의 폐해를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세계 경제는 더 많이 소비하면 더 많이 행복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을 주입하면서 성장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기업이 어린이들에게 과도한 소비욕을 조장하는 데 우려를 표했다. 그는 “기업은 아이들의 인정 욕구를 소비 욕구로 왜곡시키는 마케팅을 한다”고 꼬집었다. 어린이들이 초콜릿 ‘킨더조이’ 개수로 선물을 표현하는 것이 쉬운 예다. “착한 일 했으니까, 킨더조이 3개 사주세요”라고.
그럼 지역화란 무엇인가. 그는 신간에서 “지역화란 경제를 분권화해 지역 사회를 더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줄이고 기업이 장악한 글로벌 시장과 로컬 시장의 균형을 잡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추운 지방 사람들에게 오렌지를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반경 80㎞ 안에서 나오는 쌀을 수천㎞ 떨어진 곳에서 수입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불필요한 운송이 줄어들고 지역 경제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도 탄탄해지기 때문이다.
지역화는 어떤 효과를 가져올까. 호지는 “지역화란 근본적으로 관계에 관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상호 의존적 관계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관계는 인간의 본질적 욕구이기 때문에 경제 활동의 규모를 줄여야 그 관계가 더 긴밀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보다 동네 재래시장에서 장을 볼 때 더 안온한 세계 안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걸 떠올려보면 될 듯하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도시의 직장을 그만두고 귀촌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호지는 지역화의 첫걸음으로 농산물 직거래를 추천했다. “식량은 인류에게 매일 필요하다. 비교적 작은 변화에도 생산과 판매에 큰 파장이 일어난다. 마을 장터, 협동조합, 지역 농장을 통해 농산물 직거래를 이용해보라”고 했다. 양육 품앗이나 공동육아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호지는 “아이들이 TV 속 아이돌 스타가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을 본받고 자라야 한다”고 했다. 이런 것들이 내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지역화를 실천하는 길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역화 사례로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을 상세히 소개했다. 1994년 맞벌이 부부들의 공동육아에서 시작된 ‘성미산마을공동체’가 발전한 경우다. 호지는 “2014년 방문했을 때 700가구가 모여 살고 있었는데 사업체와 기관만 70개가 있었다. 이들은 우리의 미래가 소비주의에 있지 않고 건강한 공동체에 있다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지역화가 청년들에게도 일자리를 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지역의 작은 기업이 살아나면 그곳에 사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복잡한 대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돌아가려는 청년들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며 “인생의 기회를 탐색하고 공동체 의식을 느끼길 원하는 사람들이 해볼 만하다. 특히 농산물 직거래가 늘어나면 농촌과 도시를 연결할 이들의 역할도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책에는 ‘지역화는 고립주의가 아닌가’, ‘세계화가 빈곤을 해결하지 않았나’ 등과 같은 질문에 대한 호지의 답도 한 챕터로 수록돼 있다. 신간은 호지가 강연을 위해 휴대하는 소책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어떻게 지역화를 이뤄갈 수 있을지에 대해 구체적인 상상력을 제공한다. 지역화에 대한 저자의 자신감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