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있는 12월은 한 해 중 가장 화려하고 분주한 달이라고 할 수 있다. 거리에 세워진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는 환하게 불을 밝히고, 값비싼 물건이 진열된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는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종일 북적인다. 송년회 같은 각종 모임도 많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다. 교회들은 더 분주하다. 이때가 가장 기쁘고 활력 넘치게 보내는 시기다.
교인들은 아기 예수 탄생을 알리는 성극이나 뮤지컬 공연, 성탄 칸타타 등을 준비한다. 그리고 성탄전야에 지역주민들을 초청해 음식을 나누며 함께 행사를 즐긴다. 소외이웃을 섬기는 것도 교회의 몫이다. 보육원이나 양로원, 장애인 시설 등을 찾아가 성탄 선물을 전달한다.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엔 온기로 가득하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쓸쓸하게 성탄절을 보내야 하는 미자립·개척교회들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대형교회 외벽에 설치된 형형색색의 성탄트리는 추운 겨울밤 내내 불을 밝히지만 미자립·개척교회는 대강절의 촛불 하나도 제대로 켜지 못한 채 ‘불 꺼진 성탄절’을 보낸다. 화려한 백화점엔 물량이 차고 넘쳐나지만 미자립·개척교회엔 찾아오는 이들이 없어 가장 즐거우면서도 쓸쓸하게 성탄절을 맞는다.
최근 서울의 한 대형교회에서 연예인 전담 사역을 하는 목사님을 만났다. 10년 전 미국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처음 맞았던 성탄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주일마다 예배당 공간을 빌려 사용하느라 특별히 교회에 성탄 장식을 하지 못했던 목사님은 “왜 우리 교회는 성탄트리가 없느냐”는 어린 딸의 투정에 10달러를 주고 작은 성탄트리를 구입했다. 당시 교회 성도라곤 목사님과 사모님, 어린 딸, 친구 부부가 전부였다. 어려운 개척교회 형편에 10달러짜리 성탄트리를 산다는 건 대단한 사치였다. 성탄전야, 평일이라 예배당에 갈 수 없었던 목사님은 사택에서 가족과 함께 성탄트리 점등식을 가졌다.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불빛이 아닌 아주 작고 초라한 점등식이었다. 그런데도 아내와 딸이 박수치며 좋아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눈물을 삼켰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지만 그날 목사님에게 성탄트리의 불빛은 쓸쓸함에 떨어지는 눈물 같았다.
한국교회의 70~80%에 해당하는 미자립·개척교회 상황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아직도 낙도지역 교회들엔 피아노, 승합차 등이 필요하다. 어쩌면 밤새 불 밝히는 성탄트리를 장식한다는 건 이들 교회엔 사치일지도 모른다.
사실 성탄트리는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하나의 상징물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는 성탄전야에 숲속을 산책하다 우연히 어두운 숲에서 환하게 빛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발견했다. 눈에 덮인 전나무를 달빛이 환하게 비춰 그의 눈에 띈 것이다. 그때 루터는 깨달았다. “우리 인간이 저 전나무로구나. 한 개인은 어둠 속의 초라한 나무와도 같지만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주변까지도 아름답게 빛을 비출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루터는 이런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전나무를 집으로 가져왔고 하얀 솜 등으로 장식해 성탄트리를 만들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빛의 자녀들이고, 주님은 우리의 실천을 기다리고 계신다. 아름다운 빛을 선물할 때다.
신학대 강사인 이상윤 목사는 4년 전부터 12월이면 카카오톡 중보기도방 회원 50여명과 함께 미자립·개척교회에 성탄선물 보내기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회원들은 각자의 이름으로 교회들에 쌀과 학용품, 생필품 등 10만원 상당의 성탄선물을 보낸다. 이 목사는 “우연한 기회에 성탄절에 성도들 없이 쓸쓸하게 예배드리는 미자립·개척교회 목사님 가정들의 사연을 접했다. 이들 교회에 힘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해마다 12월이면 카톡방에서 성탄선물을 보낸다”고 말했다.
성경은 남에게 나눠주는 데도 더욱 부유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땅히 쓸 것까지 아끼는 데도 가난해지는 사람이 있다고 전한다. 베풀기 좋아하는 사람이 부유해진다.(잠 11:24~25) 성탄 시즌에 많은 사람들, 교회들은 소외이웃들에게 관심을 갖고 찾아간다. 오히려 이 시기에 미자립·개척교회는 더 소외될 수 있다.
이번 성탄절엔 집 근처 미자립·개척교회에서 목사님 가족과 함께 성탄축하 예배를 드리면 어떨까. 우리가 선물이 될 수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노희경 종교2 부장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