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향 친구들과 송년회를 하다 논쟁이 붙었다. 사업을 하는 한 친구가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 도입으로 대기업의 3·4차 협력업체들이 내년에 심각한 경영난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농촌의 농공단지에 입주해 있는 업체들은 최저임금 근로자들로 근근이 유지되고 있어 단기간 30% 상승한 인건비를 부담할 여력이 없다. 상위 협력업체들이 인건비 상승분을 납품가 인상으로 보전해주거나 정부가 지원해주지 않으면 줄도산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나온 정부 대책은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 자영업자에 집중돼 있는데 영세 제조업자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취지였다.
대화가 꼬인 것은 다른 친구가 “그럼 최저임금 인상과 52시간제 도입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이냐, 왜 정당한 정책에 발목을 잡느냐”고 맞서면서다. “바람직한 정책이니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 “그 부작용을 왜 자영업자와 영세 제조업자가 다 짊어져야 하느냐”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간극은 좁힐 수 없었다. 각자 받아보는 신문이 다르고 결국 그 신문의 논조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요즘 신문 보기가 불편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이른바 ‘보수’신문이든 ‘진보’신문이든 논조가 너무 극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보수신문은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것처럼 비칠 정도로 현 정부에 비판적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사업자의 경영난과 일자리 감소, 산업정책 부실, 한·미동맹 균열, 안보 위기 같은 소재가 단골이다. 이런 뉴스만 보면 이 나라는 정부의 실책과 무능 때문에 곧 망할 것 같다.
진보신문은 국내외의 적들과 전쟁 중이다. 적폐 청산, 기득권 공격 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보수신문은 그나마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실리적 계산이라도 하지만 진보신문은 당위만 앞세우는 이념적 행태를 보인다. 이 때문에 종종 칼끝이 자신들의 ‘우군’으로 향한다. 최근에는 최저임금제를 후퇴시켰다고 연일 ‘진보’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이런 신문은 각자 입맛에 맞는 뉴스는 부각하고 아니면 아예 배제하거나 유리하게 각색한다. 어느 한쪽의 신문만 보는 사람들에겐 재앙과 같다. 각자 다른 성향의 신문을 보는 이들이 언쟁을 하면 의견이 모아지기 어렵다. 각자 알고 있는 사실관계와 논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이없는 일은 극단적 대립이 우려될 정도로 언론의 다양성이 보장돼 있는데 문제만 생기면 언론 전체를 탓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친정부적이거나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인사들이 이런 발언을 많이 한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측면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언론 때문이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기자들은 이런 기사를 안 쓴다” 같은 발언들이 대표적이다. 일부 보수언론이나 일부 보수기자라고 하지 않고 언론이나 기자 일반을 언급하는 순간 이 발언은 무조건 거짓이다. 현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언론, 중립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이 존재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특정 언론이나 일부 언론을 비판하는 것과 언론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후자는 언론의 자유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협한다. 언론의 자유를 박탈하고 언론 통폐합을 자행했던 군사독재정권의 발상법이 이랬다.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라면 언론계를 ‘언론들’이나 ‘기자’로 싸잡아 매도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대,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하는 한국교회와 기독인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적어도 어느 한쪽에 생각 없이 휩쓸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았으면 좋겠다. 기독인들만은 특정 이념이나 사적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공평무사한 시각을 가졌으면 한다. 극단적 성향의 언론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중도·합리적 성향의 언론이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와 다른 목소리도 경청하기, 깊이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말하기, 분노하기에 앞서 깊이 생각해보기. 성경의 가르침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19~20)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