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수장고’라고 적힌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니 도열한 3층짜리 선반에 조각 작품들이 일목요연하게 진열돼 있었다. 백남준의 ‘데카르트’, 이불의 ‘사이보그’, 니키 드 생팔의 ‘검은 나나’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훤히 보이는 특수 목재 상자에 담겨 있었다. 그 사이를 걸어 다니니 수장고라기보다 전시장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버려진 담배공장이 미술 보물창고로 변신했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안덕벌로에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을 개관을 하루 앞둔 26일 찾았다. 과천관, 덕수궁관, 서울관에 이은 국립현대미술관의 4번째 분관이다.
이곳은 옛 연초제조창을 2년간 재건축한 국내 첫 공립 미술품 수장고다. 총 577억원을 투입해 연면적 1만9851㎡(약 6000평), 지상 5층 건물에 수장공간(10개), 보존과학공간(15개), 기획전시실(1개), 교육공간(2개)과 편의시설 등을 갖췄다.
개방형 수장고는 프랑스 루브르 등 유럽에선 30년 전부터 유행했지만,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학예사에게만 허용됐던 폐쇄적 공간이었지만 이제 일반인도 직접 들어가 작품을 둘러보거나 환경에 민감한 회화도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다. ‘미술품 종합병원’인 보존과학실도 유리창을 통해 전문가가 일하는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등 ‘보이는 수장고’, ‘보이는 보존과학실’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개방형 수장고는 전시장처럼 감상하는 기분도 준다. 박미화 학예연구관은 “일반 전시장이 백화점이라면 이곳은 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매장 기분이 들 것”이라고 비유했다.
단순 보관을 넘어 대여를 위한 ‘실물 카탈로그’ 역할도 한다. 외부 기관이 전시를 위해 작품을 빌리고 싶을 때 지금까지는 카탈로그만 보고 정해야 했다. 이제는 직접 조각이나 회화 작품 사이를 걸어 다니며 고를 수 있다. 운송의 편리를 위해 조각 작품은 리프트만 끼워 넣으면 바로 분리 운송이 가능한 특수 좌대 위에 올려져 있다. 3층엔 회화 작품들이 이젤과 밀차를 결합한 특수 보관대에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현재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소장품 1300점, 정부 미술은행 소장품 600점 등 1900점이 내려왔다. 총 수장 여력은 1만1000점이다.
청주관 개관은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간 문화재생의 상생모델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전국 최초로 지방자치단체 재산을 국가에 무상 양여해 활용한 사례로 꼽힌다. 1946년 문을 연 연초제조창은 과거 청주 지역 경제를 견인했으나 2004년 폐쇄되며 흉물로 방치됐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역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및 지역 미술관, 작가 레지던시 등과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할 계획이다. 지역 주민과 함께할 수 있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 등 관람객 대상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개관 특별전으로 ‘별 헤는 날: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마련돼 내년 6월 16일까지 열린다.
청주=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