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시작하는 액땜일까, 만만치 않을 아시안컵의 예고편일까. 한국 축구 대표팀이 새해 첫날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맥없이 비겼다.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의 모의고사로 치러진 경기였지만 우승 후보다운 압도적 경기력은 보이지 않았다. 실험적인 스리백과 선수들의 떨어진 컨디션, 낯선 중동 환경이라는 삼박자가 만들어 낸 결과다.

대표팀은 1일(한국시간) UAE 아부다비 바니야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0대 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아시안컵에서 세 차례나 우승한 경험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현지에서 치른 첫 경기에서 전술적 변화를 시도한 파울루 벤투 감독은 플랜 B를 시험하는 정도의 성과에 만족해야 했다.

이날 경기 내용은 썩 좋지 못했다. 전반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공을 점유하며 내내 경기를 주도했다. 후반에는 분위기를 바꿔 팽팽한 공방을 이어나갔지만 득점에 실패했다. 한국의 유효슈팅은 하나도 없었고, 슈팅(5-8)과 코너킥(2-6) 숫자에서 모두 밀렸다. 후반 36분 페널티박스 안에서 파울을 얻어낸 기성용이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등 몇 안 되는 기회도 살리지 못했다.

전술적으로 이전과 가장 달라진 점은 스리백의 수비진이었다. 그간 6번의 A매치에서 항상 포백을 구성했던 벤투 감독은 처음으로 3-4-1-2 포메이션을 꺼내 들었다. 권경원-김영권-김민재가 중앙 수비를 맡고 황희찬과 이용이 좌우 윙백으로 보완하는 대형을 짰다. 기성용과 정우영이 미드필더로 스리백 앞에 섰다. 후반전에도 선수 교체 등으로 다소 위치는 바뀌었으나 기본 틀은 유지됐다.

대표팀은 전지 훈련 기간에 스리백을 꾸준히 연습해왔지만, 실전에서 적용하기에는 아직 이른 듯한 모습이었다.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던 권경원과 윙어 황희찬은 각각 익숙지 않은 측면 수비수와 윙백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오히려 사우디아라비아의 강한 전방 압박과 역습에 공간과 기회를 내주곤 했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수비수와 윙백, 미드필더 간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 수비 조직의 안정성이 떨어지며 위협적인 크로스를 허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대회를 앞두고 플랜 B 전술을 점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간 벤투 감독은 주로 4-2-3-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경기를 운영해왔다. 일관된 플레이로 조직력을 쌓았지만, 팀의 전력과 전략이 노출되기 쉬웠다. 벤투 감독은 이번 경기를 통해 새로운 전술적 카드를 확보하고자 했다. 김 해설위원은 “4강 이상 올라가면 하나의 전술로는 버티기 힘들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쓸 수 있게 됐다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선수들의 전반적인 컨디션은 좋지 않은 듯 보였다.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한국은 이전보다 압박이 느슨했고 스피드도 떨어져 있었다. 특히 황의조, 황인범, 이용 등 시즌을 마치고 소집된 K리그·J리그 선수들의 경우 평소만큼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김 해설위원은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다 보니 찬스에서 폭발력 있게 에너지를 쏟아내지 못했다”며 “남은 기간 컨디션을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걱정했던 대로 중동의 낯선 환경도 위험 요인이었다. UAE는 한국과 5시간 이상 시차가 있고 기온도 20도 초중반으로 크게 다르다. 그라운드의 잔디 상태도 좋지 않아 곳곳에 파인 데가 있었다. 남은 기간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한국은 7일 필리핀과 아시안컵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