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들의 경배’를 그린 조토(1267~1337)는 근대회화의 창시자로 불린다. 조토를 분기점으로 고대미술과 근대미술이 나뉜다. 왜 그럴까? 조토 이전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실증이 아니라 관념을 그렸다. 사물의 입체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토는 철저히 실증적으로 그렸다. 그는 그림 속의 모든 소품과 인물들을 모두 실제 모델을 관찰해 그렸다. 그는 낙타를 직접 본 적이 없으나 부분마다 다른 모델을 보고 그렸다. 낙타의 눈은 사람의 눈을 보고 그려서 푸른색이다. 낙타의 발굽은 원래 셋이고 더 넓적한데 여기서는 말발굽을 그린 것 같다. 귀는 당나귀를 보고 그렸고, 주둥이는 말을 보고 그렸을 것이다. 이처럼 철저히 모델을 보고 그렸으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 파두아의 아레나 성당에 그려진 연작 중 하나이다. 아레나 성당은 건축가이기도 한 조토의 개인 미술관이라 할 만큼 그의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그림은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 동방에서 천문을 연구하던 박사들이 별을 따라 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드리는 장면(마 2:1~12)이다. 조토는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을 예수님을 비추는 별빛으로 그리지 않고 꼬리가 달린 별똥별처럼 그렸다. 이 그림을 그리기 몇 해 전인 1301년에 75~76년마다 지구를 찾는 핼리혜성이 나타났다. 조토가 그린 별은 혜성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는 동방박사를 이끈 별까지도 실제로 있었던 별의 모습으로 그렸다. 조토는 예수님의 오심도 실제로 나타난 핼리혜성과 마찬가지로 실제였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예수의 탄생을 알린 별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님이 가장 먼저 선택한 백성인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이었다. 이 사실은 먼저 믿은 우리가 매일 성경을 읽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일깨워 준다. 오히려 유대인들은 예수 가족을 무시하여 여관도 내주지 않았으며, 유대국의 왕 헤롯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엄청난 대학살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이방인들인 동방박사들의 표정은 경외와 찬탄으로 가득하다.
조토가 그린 하늘에 저 멀리 떠 있는 핼리혜성처럼 예수님의 오심도 아주 확실한 실증이다. 미술사에서 과학적 실증주의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연 조토는 예수님의 오심도 또 예수님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도 과학적인 실증으로 받아들였다. 조금의 지식만 있으면 마치 세상을 다 안 것처럼 성경을 믿지 못하는 세대에서 이 그림은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다. ‘다빈치 코드’를 깰 능력이 이 ‘조토 코드’에 있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 2:1~6, 11)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700여 년 전 어느 날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하던 당대 최고의 화가 치마부에가 곱돌로 바위에 그림을 그리던 한 양치기 소년을 만났다. 그는 마을의 대장장이였던 소년의 아버지를 찾아가 아들을 화가로 키우라고 설득하고 자신의 공방으로 데려가 도제로 삼았다.소년은 조토였다. 이후 치마부에가 외출한 사이 조토는 스승이 그린 인물화의 코에 파리를 그려 놓았다.외출에서 돌아온 치마부에는 캔버스에 붙은 파리를 쫓으려 했으나 날아가지 않았다. 조토의 그림이 얼마나 사실감과 입체감이 뛰어난지를 방증하는 일화다. 조토는 스승의 화풍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조토에서 시작된 회화의 평면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3차원적 입체감, 실증주의에 기반을 둔 사실 묘사는 근대 회화의 출발을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홍익대 바이오화학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