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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노희경] ‘SKY캐슬’ 과 호랑 애벌레



드라마 ‘SKY캐슬’은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고급 주택단지 스카이캐슬을 배경으로 한다. 대학병원 의사들과 로스쿨 교수 가족이 모여 사는 이곳에서 제 자식만큼은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의 끝없는 욕망과 욕심, 탐욕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로스쿨 교수는 애지중지하는 피라미드 조형물을 아들에게 보여주며 “피라미드 같은 세상에선 자신의 위치가 중요하다. 밑바닥에선 짓눌리는 것이고, 정상에선 누릴 수 있다”고 주입한다. 급기야 억울하게 누명 쓴 친구를 밟고 올라서 내신 등급을 끌어올리라고 아들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서울대 의대 진학만을 목표로 공부하는 ‘전교1등’ 예서는 친구들과의 독서모임에서 “진정한 적수를 둬 나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예전에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읽었던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저자인 트리나 폴러스가 그린 삽화이다. 애벌레들이 만든 기둥 그림인데, ‘SKY캐슬’의 피라미드와 오버랩됐다. 책에서 호랑 애벌레는 더 나은 삶을 찾아 길을 떠난다. 바쁘게 기어오르는 애벌레 기둥을 마주한 호랑 애벌레는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꼭대기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며 다른 애벌레들 틈에 끼어 함께 기어오른다. 사방에서 떠밀리고 차이고 밟혔다. 그런 상황에서 고민한다. 다른 애벌레들을 밟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발밑에 깔리느냐.

“호랑 애벌레는 밟고 올라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벌레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위협과 장애물일 뿐이었습니다. 호랑 애벌레는 그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고, 위협을 기회로 바꾸었습니다. 오로지 남을 딛고 올라서야 한다는 생각이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고, 호랑 애벌레는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꽃들에게 희망을’ 중에서)

인간의 욕심, 탐욕은 끝이 없는 거 같다. 오죽했으면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메울 수 없다’고 했을까. 하나를 가지면 금방 다른 하나를 갖고 싶고, 아흔아홉 개 가진 사람이 한 개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100개를 채우려고 욕심을 부리는 게 인간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여 탐하는 게 나약한 인간의 본성이다. 이런 마음이 내면 깊숙이 깔려 있으니 세상은 권력지향이나 물질만능, 경쟁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고, 최고가 될 수 있는지를 가르친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과 스펙이 무조건 옳다고 자녀들을 몰아세운다. 어쩌면 세상은 친구를 밟고서라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잘했다 칭찬할지 모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돌아보면 친구와의 우정, 인간성, 사회성 등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잃은 게 너무 많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모든 관계는 깨졌고 결국 빈껍데기만 남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친구는 내 발전을 위한 적수가 아니다. 밟고 올라서야 하는 위협적인 존재도 아니다.

‘SKY캐슬’과 호랑 애벌레는 이런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 살라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말이다. 그렇게 살아봐야 별 의미 없다는 걸 보여준다. ‘SKY캐슬’에서 권력에 눈먼 강준상은 소중한 딸을 잃고서야 비로소 절규한다. “어머니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서 학력고사 전국 1등까지 했고, 의대 가라고 해서 의사 됐고, 병원장 되라고 해서 그거 해보려고 기를 썼는데, 낼모레 쉰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놈을 만들어놨다”고. 호랑 애벌레는 “남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시간을 보상하고 싶다”며 애벌레 기둥에서 내려온다.

욕심, 탐욕은 삶의 가치를 어디 두느냐에 따라 버릴 수 있다. 성경 시편에는 ‘복 있는 사람’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하나님의 복은 우리가 쟁취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욕심, 탐욕을 버린 사람이 복이 있다. 독불장군, 오만불손한 게 아니라 존중하고 배려할 때 복이 있다. 하나님 말씀을 삶의 원칙으로 삼는 사람이 복이 있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친구나 가족, 동료 등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잃어버린 것도 챙기면서 올 한 해를 보냈으면 한다.

노희경 종교2부장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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