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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면서도 고집 센 생명력이 한국문학의 매력”

번역가이자 시인인 사이토 마리코씨는 14일 국민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번역이 옷의 솔기를 풀어 새로 짓는 일이라면, 솔기를 풀 때는 외국어 솜씨가, 새로 지을 때는 모국어 솜씨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봄날의책 제공 ⓒYuriko Ochiai




한국에서 페미니즘 이슈를 촉발한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이 일본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서 100만부 넘게 팔린 이 책은 지난해 말 일본에 처음 소개돼 지금까지 6쇄에 6만7000부가 발행됐다. ‘82년생 김지영’을 일본어로 소개한 번역가이자 시인인 사이토 마리코(59)씨는 14일 국민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 책의 인기는 내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며 놀라워했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사이토씨는 “한국과 일본은 가부장제 문화가 비슷한데, 서구의 페미니즘 책에 비해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인들에게 정서적으로 훨씬 친숙하다”고 했다. 이어 “주인공이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자기 감정을 투영하기도 쉽다”고 했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책 자체의 힘에 주목했다.

그는 “불필요한 부분을 버리고 (페미니즘이라는) 테마에 집중한 게 이 책의 결정적인 개성이다. 또 독자들이 잊고 살았던 상황에 생생한 말과 목소리를 입혀서 그에 대해 자기 생각을 되새기게 하는 힘이 있다. 나나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마음에 뚜껑을 덮고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인기의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메이지대 재학 시절부터 한국어를 배운 사이토씨는 1991년 한국으로 와 연세대와 이화여대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했다. 2014년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번역을 시작으로 박민규의 ‘카스테라’, 한강의 ‘희랍어 시간’,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 등을 일본에 소개했고, ‘카스테라’로 제1회 일본번역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한국어 시집 ‘단 하나의 눈송이’(봄날의책)를 내기도 했다.

사이토씨가 처음 이 책의 번역을 고려하게 된 건 2017년 8월 일본 작가 토다 이쿠코가 아사히신문에 낸 책 소개(사진)를 보면서다. 그는 “소개 글을 보면서 이 책이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본격적으로 검토를 하게 됐다”고 했다. 실제 읽어본 책은 계몽적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인물 설정도 재미있고 문장도 간결했다.

번역을 결심한 그는 원작의 담담한 문장을 고려해 대화를 일본어로 가능한 한 생생하게 옮기려고 노력했다. 사이코씨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남성의 병역 의무가 없어서인지 표면적인 남녀 대립이 한국만큼 크진 않다. 그래도 여성의 경력단절이나 가사노동 부담, 학교나 회사에서의 성희롱은 거의 똑같다. 나는 주인공의 어머니와 연배가 비슷해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번역가로서 한국 문학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을까. 사이토씨는 “한국 문학의 매력은 다양한 생명력”이라고 단언했다. “생명력은 적자생존의 힘, 환경의 변화에 자기 개성을 맞춰서 살아내는 것이다. 아주 조용한 생명력, 웃기는 생명력, 의아한 생명력, 고집 센 생명력 등 아주 다양하다”며 “한국 문학을 읽은 사람이 다음에 또 다른 한국 문학을 읽을 때 번역가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K팝 없이는 지금 여중고생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일본에서 한류가 대단하다. 한국 영화는 완전히 정착됐고 한국 문학도 이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문화를 통해 받은 좋은 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문화의 힘이 정치적 영향력보다 오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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