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에는 10년 전 이 저자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다. 어머니의 굴곡진 삶을 만화로 그린 저자는 당시 인터뷰에서 출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책으로만 공부한 우리 같은 세대에게 역사라는 건 골격만 있지 살도 없고 피도 통하지 않는 세계였죠. 그런데 엄마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실감이 나요. 6·25 전쟁도 사실 실감이 없었는데, 엄마의 경험을 통해서 '생이별'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됐죠.”
저자의 이름은 김은성(54)씨로 그가 펴낸 책은 만화 ‘내 어머니 이야기’(전 4권 애니북스)였다. 2014년 완간된 이 작품은 이후 절판되면서 독서가들의 아쉬움을 샀다. 많은 책들이 그렇듯 내 어머니 이야기 역시 세월의 중력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리는 책이 돼버린 듯했다.
하지만 지난연말 소설가 김영하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세상에서 사라져서는 안 될 책”이라고 격찬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내 어머니 이야기는 복간됐고, 베스트셀러 순위 정상에 오르내릴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현재 이 책의 누적 판매 부수는 14만부가 넘는다.
최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카페 ‘3616 Brewing’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온라인에 올라오는 독자들 리뷰를 읽는 게 요즘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어머니도 기뻐하고 계시다”면서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고 전했다.
“독자 리뷰를 보면 어머니나 할머니 세대를 좀 더 이해하게 됐다는 반응이 많더군요. ‘할머니나 어머니를 말 안 통하는 구세대로 여긴 걸 반성한다’는 내용도 봤어요. 어머니에게 이런 얘기를 전하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제 책보다 독자들 리뷰가 더 좋은 거 같다고(웃음).”
내 어머니 이야기는 1927년생인 김씨의 어머니 삶을 다루고 있다. 어머니는 함경도 북청 출신으로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원치 않은 혼인을 했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혈혈단신 남쪽으로 건너와 지금의 가정을 일궜다. 신산했던 그의 삶은 한국인이 겪은 지난 100년의 시간과 절묘하게 포개진다.
만화는 어머니의 삶을 연대기순으로 훑어가지 않는다. 현재와 과거의 삶이 뒤엉키면서 전개된다. 어머니는 구성진 함경도 사투리로 그 옛날 고향의 모습을,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과의 추억담을 들려준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 순간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알싸한 감흥에 젖게 된다.
김씨는 “어머니하고 놀이를 하듯 재밌게 작업했다”며 “어머니 역시 저와 이 책을 만들던 시기를 당신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을 쓰는 내내 충만감을, 만족감을 느꼈었다”며 “힘든 시기를 꿋꿋하게 견딘 어머니의 삶을 그림으로 옮기면서 내가 겪은 어려움이 작아지는 듯한 기분을 맛봤다”고 덧붙였다.
차기작을 묻자 “정해진 게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는 “유머러스한 작업물을 내놓고 싶다. 어떤 내용의 만화를 그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작품이었으면 한다”고 답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책 말미에 담긴 ‘개정판 작가의 말’을 펼치니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자식들이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내가 죽으면 엄마가 그리워서 이 책을 읽을 것이다’라고 예언을 하셨다. 내 생각에도 형제들이 그럴 것 같다. 나도 책을 들춰보면서 엄마와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내 어머니 이야기가 세상 속으로 훨훨 돌아다니길 희망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