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모(48·여)씨는 오래 전부터 건망증이 심했으나 별다른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자 병원을 찾아 최근 도입된 ‘치매·파킨슨병 유전자 패널 검사’를 받았다. 치매도 일부 유전된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고 가족력까지 갖게 돼 불안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유전성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질병 유발성 변이(병인성 변성)’는 발견되지 않아 안도했다.
국내외적으로 치매, 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환이 사회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유병률 또한 급증하고 있어, 의료계에서는 유전자 검사를 활용한 다양한 치매 진단 및 치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18일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약 75만명으로 추산됐다. 치매 유병률은 10.16%로 전체 노인 10명 가운데 1명 꼴이다. 2060년에는 추정 환자가 332만명(유병률 17.9%)으로 4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됐다. 치매, 뇌졸중과 함께 3대 노인성 질환으로 꼽히는 파킨슨병 환자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치매는 아직 완치가 안되는 병이다. 치료제를 통해 진행 속도를 늦출수는 있지만 멈출 수는 없다. 다양한 치매 신약이 개발 중이지만 임상시험 실패로 개발이 장기화되고 있어 치매 예방 및 조기 진단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대부분의 치매는 고령 인구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지만 환자의 5~10%는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병한다. 유전성 치매는 대부분 ‘상염색체 우성’을 나타내 부모가 유전자 변이를 보유한 경우 자식에게 유전될 확률이 50%다. 국내 치매 환자의 55~75%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해 전두측두엽 치매(10%), 루이소체 치매(4%)의 유전성 경향이 높다. 아울러 40, 50대에 발생하는 ‘조발성 치매(초로기 치매)’와 가족력이 있을 경우도 유전성이 강하다.
이런 유전성 질병의 조기 발견과 예방을 위해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기술을 활용한 유전자 패널 검사가 몇 년 전부터 국내 도입됐다. 현재 SCL서울의과학연구소를 비롯한 진단검사 전문기관과 일정 수준의 검사 장비 및 인력을 갖춘 50여개 의료기관에서 이뤄지고 있다.
NGS는 하나의 유전체(게놈)를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분해해 각 조각을 동시에 읽어낸 뒤, 얻은 데이터를 조합함으로써 유전체 정보를 빠르게 해독하는 기술이다.
암이나 희귀질환 관련 여러 개 유전자를 한번에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2017년 3월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본인 부담률이 50%로 낮아졌다. 단, 건강보험 혜택은 의료기관에서 시행될 경우만 받을 수 있다.
중앙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혜련 교수는 “NGS 검사는 수십에서 수백개 유전자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고 비교적 정확한 대량의 검사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SCL서울의과학연구소가 선도적으로 도입한 치매·파킨슨병 유전자 패널 검사는 치매 발병 위험도를 높이는 유전자 58개를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다. APOE, APP, PSEN1, PSEN2 등이 대표적 치매 유발 유전자다.
파킨슨병 관련 유전자는 LRRK2, PARK7 등 20여개가 밝혀져 있다. DCTN1 같은 유전자는 치매와 파킨슨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SCL서울의과학연구소 황금록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는 “치매 진단을 받은 노인에서 파킨슨병 유병률이 일반 노인에 비해 약 4배 높다는 보고가 있어, 치매와 파킨슨병의 유전적 위험도를 동시에 포괄적으로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단, 진단 전문기관의 경우 환자가 직접 검사 신청을 할 순 없다. 진료받은 병·의원의 검사 의뢰가 있어야 하며 검사자의 혈액(3㎖), 유전자 검사 의뢰서 및 동의서가 필요하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진 24일이 걸린다.
검사 결과지에는 미국의학유전학회(ACMG) 가이드라인에 따라 발견된 유전자 변이 가운데 치매 및 파킨슨병과 연관성 있는 ‘병인성 변이’ 및 ‘준병인성 변이’와 임상적 의미가 명확하지 않는 변이에 대해서만 설명이 이뤄진다. 질병 연관성이 없는 ‘양성 변이’와 ‘준양성 변이’는 별도로 보고되지 않는다.
황금록 전문의는 “지난해 상반기 치매·파킨슨병 유전자 패널 검사 도입 이후 지금까지 검사받은 60여명 가운데 100% 치매 유발성 변이가 발견된 사람은 없었고,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변이가 나와 추후 상담이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검사를 통해 개인의 유전자 변이 여부를 확인하고 적극적인 예방 활동 및 건강관리(규칙적 운동, 금연·절주, 적극적인 두뇌활동 등)를 실천하면 치매의 발병 연령을 늦추고 질병의 경과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검사는 평생 한번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