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로운 피아노 선율 위로 흐르는 전통 관악기의 가락이 어딘지 구슬프다. 양악기와 국악기의 낯선 어우러짐 속에서 익숙한 한(恨)의 정서가 슬며시 새어든다. 창을 접목한 뮤지컬 ‘아랑가’가 선사하는 이색적 하모니는 그렇게나 매력적이다.
삼국사기의 ‘도미설화’를 바탕으로 한 ‘아랑가’는 475년 을묘년 백제의 개로왕(강필석 박한근 박유덕)이 충신인 도미 장군(안재영 김지철)의 아내 아랑(최연우 박란주)을 사랑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판소리와 뮤지컬 넘버의 다채로운 배치로 동서양 음악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2016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무대에 올려진 재연에는 이대웅 연출이 합류했다. 최근 진행된 프레스콜에서 그는 “뮤지컬과 창극이 어우러지며 하나의 회오리를 이루도록 극을 구성했다”며 “이야기에 유기성을 더하고 상징적 오브제를 추가해 무대의 회화성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이 처음 기획된 건 2014년 아시아 시어터 스쿨 페스티벌(ATSF)에서였다. 설화와 판소리, 뮤지컬을 접목한 색다른 시도로 주목받았다. 극에 해설자인 도창(導唱·박인혜 정지혜)이 등장하는 점이 특징인데, 도창은 인물 간 관계, 심리 상태 등을 풀이해주는 한편 서사와 음악을 연결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박인혜 작창가는 “미니멀한 작품인 ‘아랑가’에서 판소리는 그 여백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면서 “판소리에서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소리의 질감을 통해 극의 변화를 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사실적인 사설과 소리로 표현하는 ‘장면의 극대화’라는 판소리 양식을 적절히 활용했다”고 전했다.
‘시간은 무엇인가, 인생은 무엇인가, 사랑은 무엇인가.’ 작품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은 가볍지 않다. 극본을 쓴 김가람 작가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한 현실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관념화했다”고 소개했다. 오는 4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TOM.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