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4일, 케이블채널 엠넷을 통해 첫 방송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이하 슈스케)는 방송가 지형도를 바꿔놓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케이블 시청률은 지상파의 10분의 1 수준이었지만 당시 슈스케는 최고 시청률이 7%를 기록할 정도로 지상파에 버금가는 성적을 냈다. 방송가엔 슈스케를 모방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슈스케의 성공은 음악 예능 전성시대를 알리는 예광탄이었다. 음악 예능은 언젠가부터 관찰 예능, 음식 예능과 함께 방송가를 대표하는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음악 예능의 어떤 매력이 시청자에게 어필하고 있는 걸까. 음악 예능의 인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물론 슈스케 이전에 음악 예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예컨대 1980년 첫 방송돼 올해로 39년째 전파를 타고 있는 ‘전국노래자랑’(KBS1)도 음악 예능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방송가의 주류 장르로 보긴 힘들었다. 2010년대 초반까지 방송가를 쥐락펴락한 건 ‘무한도전’(MBC) ‘1박2일’(KBS2)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나 전통적인 토크쇼였다.
하지만 슈스케가 성공하면서 방송가 판도는 서서히 달라졌다. 신인 가수의 등용문 역할을 하는 오디션이나 ‘나는 가수다’(MBC)처럼 기성 가수들이 가창력을 겨루는 경연형 예능이 봇물을 이뤘다. 이를 통해 경연형 예능은 음악 예능의 주된 포맷으로 자리잡았다. 예컨대 ‘불후의 명곡’(KBS2)은 2012년부터 주말 저녁 안방을 책임지고 있으며, ‘쇼미더머니’ ‘프로듀스 101’(이상 엠넷) 같은 프로그램은 매년 새로운 시즌을 선보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음악 예능이 지난 10년간 꾸준히 진화를 거듭했다는 점이다. 특히 추리의 재미를 가미시킨 프로그램은 음악 예능 인기의 끌차 역할을 했다.
2012년 첫 번째 시즌을 선보인 ‘히든싱어’(JTBC)는 가수와 그의 ‘모창 능력자’의 노래 대결이라는 이색적인 포맷을 앞세워 화제가 됐다.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인데도 최고 시청률이 10%를 웃돌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5년 첫선을 보인 ‘복면가왕’(MBC)은 가창자의 정체를 추측하는 얼개를 띠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 역시 7~9%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복면가왕은 SNS 버즈량(언급횟수) 등을 토대로 점수를 매기는 콘텐츠영향력지수(CPI) 순위에서 거의 매주 최상위권에 랭크된다.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면 출연자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린다. 이 밖에 ‘너의 목소리가 보여’(엠넷)도 추리 요소를 가미시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5년 2월 첫 방송을 내보낸 이 프로그램은 현재 여섯 번째 시즌이 방송 중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음악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라며 “음악을 활용한 예능 콘텐츠는 2010년대 들어서면서 예능의 축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히든싱어를 포함한 많은 프로그램의 포맷이 해외에 수출될 정도로 한국의 음악 예능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며 “음악이 지닌 예능적인 요소를 발견해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킨 건 한국 방송가가 지난 10년간 거둔 성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방송가 트렌드는 꾸준히 변화한다. 인기가 계속될 것처럼 여겨지던 토크쇼나 리얼 버라이어티 같은 콘텐츠만 하더라도 지금은 그 인기가 시들해졌다. 그렇다면 음악 예능의 인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전문가들은 저마다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김헌식 평론가는 “오디션, 경연, 추리쇼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한 만큼 음악 예능의 생명력은 상당히 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음악 예능의 파괴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면서도 “음악을 소재로 삼은 프로그램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음악 예능의 인기는 ‘가늘고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