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 온 남한 땅이었다. ‘최승희 키즈’였던 어린 딸이 발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골목에서 춤을 추자 어머니는 어느 날 토슈즈를 없앴다. 한국전쟁 전엔 북한 땅이었던 강원도 철원에서 살 때 5살의 그녀는 현대무용의 선구자 최승희(1911~1967)가 발탁한 발레 꿈나무 중 한 명이었다.
토슈즈 대신에 택한 건 그림물감이었다. 어머니는 이것도 반대했다. 어머니의 뜻을 따라 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도 교육학과에 진학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화가로 살고 있다. 그것도 40년째. 원로 김테레사(76·사진) 작가가 화업 40년을 결산하며 ‘김테레사 초대전: 자유와 열정의 파드되’를 갖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전시장에는 발레부터 플라멩코까지 춤 그림 40점이 나왔다. 최승희에게 사사했던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주제다. 또 다른 축은 누드화이다. 사연이 있다. 2년 전, 피카소와 르누아르 등 미술사 거장들의 누드화만 모은 전시를 보고 나오다 그녀가 호기롭게 말했다. “누드화가 어떤 것인지 한국 여자가 제대로 보여주겠어.”
이번 전시를 통해 약속을 지킨 셈이 됐다. 분방한 붓질로 표현한 원색의 누드화 60점을 만날 수 있다. 아담과 이브를 시작으로 지혜의 여신, 미의 여신 등 신화 속 다양한 여신이 등장한다. 선생님이 되었어야 할 그녀는 어쩌다 화가가 됐을까. “끼는 누를 수 없는 거예요. 누르면 더 세게 분출되지요.”
출발은 사진이었다. 대학원 다닐 때 취미로 사진을 배웠는데, 1968년과 69년 ‘동아 사진 콘테스트’에 거푸 특선했다. 결혼 후 남편과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가면서 마침내 화가의 길에 도전했다. 명문 미술대학 프랫 인스티튜트에 당당히 합격했고, 79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화가로, 사진작가로 쉼 없이 달려온 그녀답게 화폭마다 에너지가 분출한다. 전시는 4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