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 이 질문에 대한 생각거리를 담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3·1운동 자체를 폭넓게 조명하거나 깊게 파고든 책이 있는가 하면 3·1운동에 참여했던 평범한 노동자 농부 학생의 이야기를 모은 책도 있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집도 있고, 초등학생이나 유아 눈높이에 맞춘 책도 나왔다.
3·1운동 100년(전 5권·휴머니스트)은 단연 돋보이는 역사서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3·1운동의 거의 모든 역사를 망라한 총서다. 저자는 1988년 창립돼 회원 700여명이 활동하는 한국역사연구회다. 89년 3·1운동 70주년을 맞아 ‘3·1민족해방운동연구’를 펴냈던 이 단체는 2016년 3·1운동100주년기획위원회를 조직하고 이 책을 준비해왔다.
위원회는 지난 100년간의 3·1운동 연구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바탕으로 기존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3·1운동을 다룰 필진 39명을 섭외했다. 이 총서는 사건의 배경 전개 결과 의의를 주된 내용으로 기존 책과 달리 실증적 분석을 시도하면서 조명되지 않았던 사실에 초점을 두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흔히 1919년 3월 1일 만세 시위라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집회를 떠올린다. 교과서도 3·1운동 발발지로 서울만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날 시위는 전국 7곳에서 있었는데 서울을 제외하고는 모두 북부 지방인 평양 의주 원산 등에서 일어났다.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방의 시위가 서울보다 오히려 더 조직적이고 규모도 컸다.
3월 1일부터 14일까지 2주간 전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276회 중 71%가 북부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수치가 단적인 증거다. 북부 지방의 시위가 3·1운동의 도화선이라는 사실은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던 부분이다. 또 전국에서 일어난 자발적인 만세 시위는 기독교와 천도교의 연대, 종교인 학생 노동자 농민의 연대 속에서 이어졌다.
4권 ‘공간과 사회’는 독감이 3·1운동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대다수 조선인들은 1918년 전 세계를 휩쓴 독감 때문에 가족 혹은 친지가 목숨을 잃는 상황을 직접 겪거나 전해 들어야 했다. 이듬해 일어난 3·1운동의 공간은 조선인들이 식민당국에 대한 울분을 토하고 개인적인 아픔을 분출할 기회가 된 측면도 있다.
3월 1일의 밤(돌베개)은 지난 10여년간 당대 신문, 잡지, 재판 기록, 문학작품, 국내외 자료를 연구한 문학평론가 권보드래의 책이다. 깃발 침묵 평화 노동자 후일담 등 16개의 키워드로 3·1운동을 풀어낸다. 저자는 특히 밤에 주목한다. 3월 1일 이후 9일, 10일, 23일 등 큰 봉기는 밤에 이뤄졌고, 도시 지식인들보다는 노동자들이 중심축이 됐다. 한낮 시내보다는 밤의 산등성이에서 만세 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졌다. 인문학적인 접근을 통해 역사 속에서 부각되지 않았던 3·1 운동의 실태와 본질을 고찰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조한성이 쓴 만세열전(생각정원)은 한마디로 보통 사람들의 만세운동이다. 열아홉 살 소년부터 순사보까지 3·1운동이라는 거대 서사에 가려졌던 평범한 기획자, 전달자, 실행자들의 생생한 얘기다. 저자는 “동학농민운동에서 시작된 우리 민주주의 역사가 3·1운동을 거쳐 60년 4·19혁명, 80년 광주민주화운동, 2016년 촛불시위까지 이어진다”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3·1운동이 자리하고, 우리 민주주의 역사를 관통하는 것은 이 자발성”이라고 강조한다.
책에는 강요가 아니라 자기 의지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배재고보 학생 김동혁은 일제 판사의 심문에 “난 조선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사무원 인종익은 “만인이 죽어 백만인을 살리는 방법이 있다면 죽음도 불사할 것이오. 만인을 죽이면 만인의 피가 백만을 물들이고, 백만을 죽이면 백만의 피가 천만을 물들일 것이요. 그럼 결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소?”라고 한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창비)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3·1운동의 실체와 그 의미를 논한 것을 모은 것이다. 역사학자 이기훈은 ‘3·1운동과 깃발’이란 글에서 “당시 깃발과 격문에서 자주 발견되는 ‘내가 대표다’라는 언술에서 볼 수 있듯 민중 스스로 인민주권의 원리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3·1운동은 한국 근대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한다. 저널리스트들이 쓴 역사 논픽션 3·1운동(한울)은 당시의 상황을 심층적이고 총체적으로 풀어낸 논픽션이다. 인물의 발자취를 세밀하게 좇거나 국내외 언론의 움직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전함으로써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3·1운동의 서사를 종합한다.
아이들을 위한 책도 매우 다채롭다. 대한 독립 만세(서해문집)는 청소년소설을 주로 써온 작가 5명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쓴 소설집이다. 거대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만세운동의 중심에 섰던 청소년 5명의 이야기다. 마방 일꾼 유근, 농촌 소년 기철 등이 주인공이다. 역사를 지루해 하는 청소년이라도 이 책이라면 흥미를 가질 것 같다.
우리가 알아야 할 3·1운동(꼬마이실)은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에 맞춰 3·1운동을 풀어쓴 것이다. 이 운동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지고 무장 독립운동이 시작됐다는 것을 차근차근 알려준다. 선생님, 3·1운동이 뭐예요?(철수와영희)는 초등학교 저학년용이다. 누가 독립선언서를 썼는지, 어떻게 한날한시에 만세를 외쳤는지 등 궁금증에 답하는 형식이다. 문장도 ‘~요’체다.
백년아이(다림)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다. 1919년에 태어나 100세를 맞은 할아버지 ‘독립’이 증손녀 민주에게 자신의 삶과 우리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 “바로 네가 두 발로 서 있는 이 땅이 너희가 평화를 꽃피우고 행복을 노래할 곳이란다.” 큼직한 판형에 강렬한 판화와 부드러운 드로잉이 함께 나온다. 우리 민족의 강인함과 선한 심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림이다.
장담하건대 올해만큼 3·1운동에 대한 책이 이렇게 다양하게 많이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각자의 관심과 연령에 맞게 이 책들을 골라 읽는다면 3·1운동이 평화 통일과 민주화 운동의 원류라는 것을 실감할 듯하다. 또 어떤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제시할 것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