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현재의 세계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묻는 13개 문제를 던지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들 질문을 전부 소개할 순 없으니 문제지 첫머리를 장식한 ①~③번 문항만 풀어보도록 하자.
①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
A. 20% B. 40% C. 60%
②세계 인구의 다수는 어디에 살까.
A. 저소득 국가 B. 중간 소득 국가 C. 고소득 국가
③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A. 거의 2배로 늘었다 B. 거의 같다 C.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자, 이제 채점을 해보자. ①~③번의 정답은 각각 C B C다. 당신의 점수는 몇 점인가.
저자는 2017년 저런 형태의 문제 13개를 준비해 14개국 약 1만2000명에게 풀도록 했다. 향후 지구온난화 가능성을 묻는 쉬운 문제를 제외하면, 나머지 12개 문제 가운데 응답자가 맞힌 문제는 평균 2개였다. 삼지선다형 질문이었으니 눈 감고 찍어도 4개는 맞혀야 했건만 직장인이든 교수든 기자든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빵점’을 받은 사람도 15%나 됐다.
이 같은 결과가 드러낸 바는 명확했다. 사람들은 세상을 오해하고 있었다. 세계는 생각보다 근사하고, 진보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앞날을 낙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주인공은 이 책의 저자인 한스 로슬링(1948~2017·사진)이다. 그는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스웨덴에서 활동한 공중 보건 전문가였다. 평생 그는 편견이나 억측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했다.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퍼뜨리겠다고 다짐했다. 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그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열었다.
그가 펴낸 책의 제목 ‘팩트풀니스(Factfulness)’는 사실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태도를 의미한다.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세계에 관한 심각한 무지와 싸운다는 내 평생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마지막 전투”라고 썼다. 지난해 해외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특히 소문난 독서광인 빌 게이츠는 이 작품을 격찬하면서 미국 대학생 전원에게 팩트풀니스를 선물하기도 했다(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책의 전자책을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게 해줬다). 게이츠는 “내가 읽은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팩트풀니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사람들이 현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를 자세하게 분석하면서 미래를 낙관하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이 사람들을 옥죄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런 세계관은 막연한 느낌을 확실한 사실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인간의 본능 탓이라고 적어두었다.
저자는 정확한 현실 인식을 왜곡시키는 인간의 본능을 10개로 구분해 설명한다. 가장 앞세운 본능은 “간극 본능”. 간극 본능은 “모든 것을 서로 다른 두 집단, 상충하는 두 집단으로 나누고 둘 사이에 거대한 불평등의 틈을 상상하는 본능”인데, 쉽게 풀어쓰자면 이런 거다.
예컨대 사람들은 지구촌을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로 구분해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세계는 그렇게 일도양단이 가능한 얼개를 띠고 있지 않다. 이 기사 처음에 등장한 문제들 중 ②번 문항을 보자. 세계 인구의 다수는 부자 국가도, 가난한 국가도 아닌 “중간 소득 국가”에 산다. 그 비율이 75%에 달한다. 고소득 국가를 합하면 인류의 91%가 가난하지 않은 나라에 거주하고 있다. 1960년대와 견주면 그 비율이 크게 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무엇이든 “두 집단으로 나누는 행위”를 그만둬야 한다면서 심플한 해법을 제시한다. 2개 단위가 아닌, 4개의 집단으로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국가들을 경제적 수준에 따라 1~4단계로 나눈다면 이분법의 성긴 그물로는 건질 수 없던 진실들을 거머쥘 수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프레임엔 존재하지 않던, 75%의 중간 소득 국가(2단계와 3단계)의 발전상을 확인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저자가 도마에 올리는 본능 가운데 “부정 본능”도 주목할 만하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다고 넘겨짚는다. 실제로 “세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점점 나빠진다”고 답한 비율은 대다수 국가에서 50%가 넘었다.
그러나 세계는 사람들 생각처럼 엉망진창이지 않다. 온갖 데이터가 이를 증명해준다. 부정 본능을 다룬 챕터에만 이런 내용이 담긴 그래프 32개가 실려 있다. 1970년대에 비해 현대인의 기대수명은 10년이나 늘었다. 비슷한 기간 영양부족을 겪던 인구는 28%에서 11%로 급감했다. 안전한 상수원을 사용하는 비율은 최근 30여년 사이에 30% 포인트나 상승했다(그래프 참조).
TV나 신문을 보면 지구촌 도처에서 재난과 테러가 간단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들 역시 미디어가 만든 착시현상이다. 사망자 비율만 놓고 보면 자연재해로 숨지는 사람은 전체의 0.1%이고 항공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 비율은 0.001%밖에 안 된다. 살인이나 테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각각 0.7%, 0.005% 수준이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이런 사건들만 대대적으로 보도하니 미디어의 렌즈로만 세상을 보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문제가 생기면 특정인이나(보통 정치 지도자인 경우가 많다) 집단에 비난을 쏟아내는 ‘비난 본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역시 좋은 태도가 아니다.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걱정하며 중국이나 인도가 뿜어내는 오염 물질에 혀를 찬다. 그런데 오늘날 대기에 축적된 이산화탄소 대부분은 지금 잘 사는 나라가 된 국가들이 지난 50년간 배출한 것이다. 저자는 “세계를 바꾸고 싶다면 누군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일갈한다.
빈곤 건강 교육 환경 등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하나도 어렵지 않은 책이다. 세계의 진보를 증명하는 자료가 빽빽하게 실려 있다. 저자는 이들 자료를 “정신적 평화를 주는 데이터”라고, “마음을 치유하는 데이터”라고 규정해놓았다. 이대로 가다간 지구가 결딴나고 말 것이라고 을러대고 겁박하는 대다수 사회과학 교양서와는 결이 다른 작품이다.
물론 이런 책에 쏟아질 비난도 예상 가능하다. 많은 이들은 저자가 자신의 주장에 걸맞은 데이터만 취사선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을 것이다. 저자가 견지하는 낙관보다는 암울한 비관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올 듯하다.
저자가 이런 반박을 예상하지 못할 린 없었을 터. 그는 자신의 주장은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걱정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고, “걱정할 대상을 제대로 알자”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내가 그들이 몰랐던 거대한 발전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나를 종종 낙천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화가 난다. 나는 낙천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아주 진지한 ‘가능성 옹호론자’다. 이는 내가 지어낸 말인데, 이유 없이 희망을 갖거나 이유 없이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사람을 뜻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