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여옥사(女獄舍)에 갇힌 유관순 열사 외 6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수많은 공포의 밤을 서로 달래고 용기를 얻기 위해 결기에 찬 노래를 불렀다. 2013년 복원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여옥사에는 8개의 감방이 있다.
6개는 2∼3명이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작은 방이다. 2개는 6∼7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크기다. 8호 감방은 두 개의 큰 방 중 하나로 ‘유관순 열사의 방’으로 통한다.
슬프고도 거룩한 창가(唱歌)를 부른 주인공들은 3·1운동 주동의 죄목으로 수감된 유관순 심명철(본명 심영식) 어윤희 권애라 신관빈 임명애 김향화 등이다. 대부분 기독교 신자였던 8호 감방 수감자들은 엄청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함께 기도하고 노래를 불렀다.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외치다 끌려온 열사들은 서슬 퍼런 일제의 감옥에서 은장도 하나 없이 온몸으로 맞섰다. 시시각각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를 기도와 ‘피눈물의 기도’로 극복했다.
“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두 무릎 꿇고 앉아 주님께 기도할 때/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 열고 던져줄 때/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진흙색 일복’은 황토색 일본 옷으로 죄수복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진중이’는 ‘전중이’의 은어로 ‘징역살이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대한이 살았다’는 곡이다. 이 노래 역시 가락은 알 수 없다.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3·1운동의 기운과 정신을 ‘대한이 살았다’로 표현하고, 독립을 바라는 결기를 보여준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두 노래의 가사는 8호 감방 7명 가운데 권애라 지사가 썼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개성에서의 3·1운동을 주도했던 권 지사는 명창처럼 노래를 잘해 개사해서 잘 불렀다. 개성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충교예배당 내에 있는 유치원 교사 권애라 지사가 독립선언서를 입수함으로써 시작됐다. 심명철 지사는 개성의 호수돈여학교 졸업생이었다. 1919년 3월 3일 호수돈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군중대열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다 체포됐다.
8호 감방 수감자 중 3명은 각기 출신지역이 달랐다. 유관순 열사는 충남 천안 병천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임명애 지사는 1919년 3월 10일 파주군 와석면 교하리 공립보통학교운동장에서 100여 학생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됐다. 기생 출신의 김향화 지사는 경기 수원군 자혜병원, 경찰서 앞에서 동료 기생 30여명과 함께 만세시위에 나섰다.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유관순 열사와 같은 방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진 노순경 지사는 독립운동가 노백린 장군의 차녀이며,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다 1919년 12월 2일 20여명의 동지와 함께 태극기를 제작해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와 8명의 감옥 동지들이 지어 부른 노래와 그날의 생생한 기록이 마침내 다큐멘터리 영화 ‘1919유관순 그녀들의 조국’으로 100년 만에 다시 울려퍼지고 있다. 엊그제 전국 250개 극장에서 개봉된 영화는 1세기 전, 소녀들이 남긴 그날의 생생한 기록이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참을 수 있사오나 내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열사가 남긴 유언을 다음 세대에게 제대로 전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는 윤학렬 감독은 “100년 전 유관순 열사와 그녀들의 기도가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967만여명의 기독교인들이 이 영화를 관람해 나라와 민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19유관순 그녀들의 조국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식 후원 작품이다. 지난달 말 개봉된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도 극심한 고문 중에도 만세를 외치며 제국주의의 폭력에 저항하던 그녀들의 숭고한 모습을 비장하고 무거운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애국의 달 둘째 주말이다. 가족과 함께 100년 전 소녀들이 남긴 그날의 생생한 기록을 찾아나서보길 권한다.
윤중식 종교기획부장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