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창완(65)을 처음 만난 건 2011년 9월이었다. 자신이 이끄는 김창완밴드의 새 음반을 홍보하는 자리였는데 인터뷰 말미에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먼 곳에서, 수많은 외로움과 슬픔, 기쁨을 거쳐서 내 곁에 온 것 같은 음악, 그런 음악은 흔치 않거든요.”
당시엔 정확히 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최근 김창완이 내놓은 새 음반 ‘사랑해요’(사진)를 들으니 8년 전 그가 했던 말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음반에는 담백한 어조로 자신의 삶을 노래하거나 차분하게 일상을 관조하는 그의 시선이 녹아 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수많은 외로움과 슬픔, 기쁨을 거쳐서 온 것 같은 음악”이 그의 새 음반 수록곡들이다.
최근 서울 서초구에 있는 그의 자택을 찾아 김창완을 인터뷰했다. 신보를 발표한 소감을 묻자 그는 세상을 떠난 막냇동생 김창익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와 함께 밴드 산울림을 결성했던 김창익은 2008년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김창완은 “막내가 죽은 뒤 겪은 방황의 시간이 참 모질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김창완밴드를 결성한 뒤 10년간 주로 ‘용서’나 ‘위로’를 주제로 삼은 곡들을 내놨었죠. 그런데 이제 제가 겪은 비극을 털어내고 싶었어요. 음반명을 ‘사랑해요’라고 지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음반에는 ‘먼 길’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이제야 보이네’ 3곡이 담겨 있다. 단출한 구성이지만 각 노래가 품은 무게감은 가볍지 않다. 가령 ‘이제야 보이네’는 김창완이 2005년 발표한 동명의 산문집에 함께 담겼던 CD의 수록곡인데,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등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제야 보이네/ 아버지 자리 떠난 지 7년/ 술에 취해 걱정 말라시던 그 무거운 어깨를 누가 아나/ …/ 얼마나 좋을까 건강하시면/ 놀이터에서 내가 운다.”
김창완은 “음반을 만들면서 새로 녹음을 했는데, 결국 2005년에 녹음한 버전을 그대로 실었다”며 “내겐 과거의 내 모습이 담긴, 스냅사진 같은 노래”라고 소개했다. 이어 “요즘 들어 보잘것없는 작은 사랑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김창완이 속한 산울림이 가요계에 데뷔한 건 1977년이었다. 당시 김창완의 나이는 고작 스물세 살. 20대 초반의 청년이 벌인 일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산울림의 행보는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많은 가수와 달리 나이트클럽 무대엔 서지 않았다. 전주만 무려 3분 25초간 이어지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같은 곡에서 보여준 파격은 지금도 회자된다. 김창완은 “당시 대중음악은 중소기업의 ‘고유 업종’이었다”며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져 있었고, 대중들과 ‘문화적인 소통’도 더 수월했다”고 말했다.
새 음반 출시에 맞춰 김창완은 20일부터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김창완의 수요동화’라는 타이틀로 공연을 시작했다. 5월 29일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장기 공연이다. 공연 소개를 부탁하자 그는 대뜸 취재진을 자택 2층에 있는 작업실로 이끌었다. 그는 “노래를 하려니 너무 떨린다”며 마이크 앞에 앉아 신곡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를 들려주었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행복했다고/ 헤어지는 날까지 우리는 하나였다고/ 이제는 지나버린 시간이지만/ 가슴에 별빛처럼 남아있겠지.”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