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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제주도 세화오일장(Ⅱ)



25일 열린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412 세화오일장에는 채소 모종이 시장 모퉁이마다 바닥에 가득 널렸다. 순한고추, 청양고추, 아삭이고추, 가지고추, 당초고추, 비타민고추 등 고추 모종이 검은색 플라스틱 모종판에 싹을 틔웠고 적상추, 양상추, 아삭이상추, 적깻잎, 청깻잎과 단호박, 맷돌호박, 왕토마토, 대추방울토마토가 한 포기씩 집어갈 수 있게 나뉘어 있다. 부추, 대파, 꽃갓, 방풍, 당귀, 파프리카, 산마늘, 케일도 눈에 띈다. 이들 모종은 작은 텃밭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제주도에는 이들 수요가 많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이 즈음 꽃가게도 화려하다. 감귤, 한라봉, 레드향, 황금향 등 귤 종류 묘목은 사시사철 팔리는 것이고 꽃이 한두 송이 맺힌 홍매화, 호주매화, 구기자, 라일락, 치자, 작약, 앵두, 오디, 레몬 등 묘목도 나왔다. 쉽게 들고 갈 수 있게 작은 화분에 심은 꽃들은 화려하지만 이름이 낯설다.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 언제부턴가 우리 화단을 점령한 외래종들이다. 채송화, 봉숭아, 백일홍, 분꽃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하긴 이들도 처음에는 목화처럼 외래종이었으리라.

세화오일장은 아름다운 세화항 방파제를 끼고 해안도로에 자리 잡고 있다. 시장 면적이 4752㎡에 점포가 151개로 제주 동부권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시장에 입점하지 않는 노점상 30여곳을 포함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세화항과 해안도로라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어 세화오일장이 열리는 5일, 10일 등 세화장날은 제주 동부권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놓치고 싶지 않은 코스가 됐다. 전통시장 살리기 예산 사업으로 해마다 투자가 이뤄져 바닷가로 전면 유리 폴딩도어가 설치됐고 주차장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

세화오일장은 1912년 구좌읍 하도리 별방진에서 시작됐다. 전통시장 대부분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처럼 당시 인구가 밀집하거나 왕래가 많은 곳이 별방진이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 뒤 세화리로 옮겨 전항동, 세화중학교 입구, 시장동, 세화초등학교 동쪽 등 도로가 새로 개설된 곳, 또는 국유지 등으로 전전하다 현재의 세화매립지에 정착하게 됐다. 바닷가 최고의 전망으로 꼽히는 현재 부지에 주택사업자가 아니라 오일장이 입지하게 된 것을 보면 당시 매립지 매각이 수월치는 않았던 모양이다.

제주시 구좌읍 자료에 따르면 세화오일장 점포는 151곳이다. 생선가게가 30곳을 차지하고 있다. 이어서 옷가게가 28곳으로 많다. 야채상이 6곳, 김치나 반찬을 파는 식품점 5곳, 화원과 과일 각 4곳, 신발가게와 약초가게가 각 3곳 있다. 해녀들이 물질할 때 쓰는 빗창, 뽕짝 메들리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소형 음향기기, 목기, 모자 등 잡화라 분류하는 점포가 28곳이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고전적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위 품목별 점포 비율은 세화오일장에 오는 사람들의 요구와 소비를 현실적으로 반영한다고 보기에 부족하지 않다. 오일장에서 팔리는 물건을 보며 이곳 주민들 생활의 단면을 살짝 들여다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잡화점 앞에 ‘고사리 앞치마’라고 써 붙였다. 앞치마에 캥거루처럼 주머니를 크게 달았다. 숲을 헤치며 고사리를 꺾을 때 가방이나 봉지를 들지 않고 두 손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필요는 꾸준히 발명을 낳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제주도 산길 곳곳에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을 볼 때가 됐다.

박두호(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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