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잘 살고 있는 게 맞나?’ 이 질문은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올라온다. 증명해내야 하는 능력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에게 지극히 정직한가의 문제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자신이 바라던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여부의 문제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난해해서가 아니다. 잘 사는 건 능력의 문제이고, 그 답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해줄 문제라고 여기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영화 ‘증인’은 관객에게 이 질문을 누가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영화에서 80대 노인의 사망사건이 발생한다. 자살 또는 타살의 기로에서 한 가정부에 의한 타살로 의심되는 증언이 나온다. 증인은 자폐를 가진 이웃집 소녀 임지우(김향기 분)다. 증인 외에는 타살의 증거가 없음에도 소녀의 증언으로 가정부는 구속된다.
이 사건을 맡은 이가 변호사 양순호(정우성 분)다. 그는 아버지가 친구의 보증을 섰다가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변론하던 민변을 그만두고 거대 로펌에 들어갔다. 그는 로펌의 대사회적 이미지 개선을 위해 이 사건의 무료국선 변론을 맡게 된다. 피의자인 가정부를 접견한 후 그녀의 무죄를 확신한다. 남은 건 유일한 증인인 지우의 증언이 증거로 채택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입증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지우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
하지만 지우는 일상에서 소통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그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동일한 증언을 위해 법정에 서려고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억울함을 반드시 풀어줘야 한다는 사명감 속에 순호는 줄기차게 지우를 찾아가고, 마침내 지우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법정에 서게 된 지우. 순호를 믿기에 용기를 내 나선 자리였지만 진실을 드러내야 하는 법정에서 지우는 철저히 소모품으로 이용당하고 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순호는 지우와 지우 어머니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기게 된다.
살면서 이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때 ‘잘 살고 있다’는 평가를 외부의 시선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처럼 보이니까. 내면의 소리는 듣지 않게 되고, 마음엔 먼지와 얼룩이 쌓여가기 마련이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보이지 않게 된다.(마 25:40)
순호 역시 그런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힘들다고 여기던 지우를 통해 순호는 정말 잘 살고 있는지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온갖 미사여구로 가득한 세상의 표현을 모르는 지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친구는 늘 웃는 얼굴인데, 나를 이용해요. 엄마는 늘 화난 얼굴인데, 나를 사랑해요. 아저씨는 대체로 웃는 얼굴이에요.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 겁니까?”
그저 열심히 달려왔을 뿐인데, 그러다 보니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는지 모를 수 있다. 그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길로 가면, 나는 어제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순호는 지우를 통해 들려온 이 소리에 뒤늦게나마 정직하게 반응했다. 그러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의 소리가 들렸고, 이전에 보이지 않던 진실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좋은 사람이 되는 길로 들어섰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필름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