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이나 출연 제안을 고사했다. 천하의 전도연(46)이라지만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에 담긴 감정의 중압감을 견디는 일은 그만큼이나 버거웠다. 가슴속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은 세월호 참사, 그 쓰라린 아픔을 오롯이 되새겨야 했으므로.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마음을 고쳐먹은 건 작품의 진정성 때문이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슬픔이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는 점이 좋았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니 따뜻함이 느껴지더라. ‘그렇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는 3일 개봉하는 ‘생일’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부모가 1년 뒤 아들의 생일날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야기다. 극 중 전도연은 아들 수호(윤찬영)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엄마 순남을 연기했다.
극은 순남의 감정선을 따라 전개된다. 해외에서 일하느라 가족의 곁을 비웠던 남편(설경구)을 원망하며 딸 예솔(김보민)과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순남. 눈물 따윈 이미 메말라버린 듯 건조한 그의 얼굴은 일상의 매 순간 아들이 떠오를 때마다 흔들리고 요동친다.
“사람들은 순남의 히스테릭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요. ‘왜 저래? 이상해졌어’라며 손가락질하죠. 하지만 저는 순남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받아주고 싶었어요. 친구이자 애인 같았던 아들을 잃었는데 어떻게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순남에게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아이를 앞세운 엄마의 심정을 경험하는 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전도연은 전작 ‘밀양’(감독 이창동·2007)에서도 비슷한 역을 맡은 적이 있다. 당시 “연기가 가짜처럼 느껴지고 성에 차지 않아” 촬영을 접기도 했었다는 그다. ‘생일’ 출연을 망설였던 건 그때의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밀양’의 신애를 연기할 땐 인물에 들어가려 발버둥을 쳤어요. 온몸을 불살랐죠. 그런데도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실제로 엄마가 되고 나서 ‘생일’의 순남을 만나니,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좀더 알겠더라고요. 오히려 한발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연기하려 했어요. 혹여나 내 감정이 앞설까 봐.”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후반부 30분간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수호의 생일 모임이다. 50여명의 출연진과 함께한 장면에서 전도연은 꾹꾹 누르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는 “수호의 성장 과정이 담긴 영상을 보고 순남은 무너져 내린다. 그때는 순남이자 전도연으로서 걷잡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전도연은 그동안 엄마의 출연작을 본 적 없는 열한 살 난 딸에게 처음으로 ‘생일’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했다.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마주하기까지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죠.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점도 좋아요. 힘들지라도,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거든요.”
‘눈물의 여왕’ 혹은 ‘칸의 여왕’. 전도연에게는 여러 수식어가 붙곤 한다. “그전에는 ‘영화나라 흥행공주’였어요(웃음). 너무 웃기죠. 그 정도로 흥행 영화를 많이 찍었거든요. 최근엔 흥행이 저조했는데, 내심 고민이 많았어요. ‘혹시 나 때문인가. 내 연기가 부담스럽나’ 여러 생각이 들죠.”
그는 “대중은 이제 전도연이 얼마나 열연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어련히 잘했겠어’ 하는 거다. 그럼에도 영화적 기대치만은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오는 9월엔 차기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선보인다. “그것도 잘돼야 할 텐데…. 산 넘어 산이네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