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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강주화] 유죄 추정이 지배하는 청문회



지난 국회 청문회를 보면서 수습기자 시절이 떠올랐다. 매일 새벽과 늦은 밤 경찰서를 돌면서 취재를 했다. 단순 폭력사건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일은 선배에게 보고해도 보도가 되지 않았다. 술에 취한 사람이 자신을 노려 봤다는 이유로 주먹을 휘두른 일을 쓰자면 신문 지면이 남아날 리 없을 테니까. 어느 순간,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은근히 사상자가 많이 나오길 기대했다. 나중엔 살인과 같은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길 바라는 ‘부도덕한’ 나를 발견하게 됐다. 그런 사건은 기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나 장관 후보자를 청문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에게도 이런 태도를 볼 수 있었다. 후보자를 범법자이거나 비윤리적인 인사라고 단정하면서 무차별적으로 난타하는 것이다.

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단적인 예다. 야당 소속 한 청문위원은 이 후보자 부부의 불법 주식투자 의혹을 제기했다. 후보자 부부가 보유한 35억원 주식 중 20억원 이상이 후보자가 담당한 재판과 관련돼 있어 이해충돌이 있고 주식 거래 시점이 해당 기업의 공시 시점과 절묘하게 맞물려 내부 정보 유출 가능성을 의심했다.

물론 관련 재판을 맡은 것이나 거래 시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추후 내부 정보 이용 등에 대한 후보자 부부의 납득할 만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청문위원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사퇴를 요구했다. 유죄추정이다. 검증이 아니라 낙마라는 ‘한 건’을 목표로 하는 듯하다. 후보자 부부의 주식투자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면은 있지만 불법과는 다른 문제다.

국회는 국민을 대신해 최고위 공직자를 청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의혹을 제기하고 그 입장을 듣는 것은 국회의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후보자는 적절한 답변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 2000년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공직자 배제 기준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노무현정부에서 병역기피·위장전입·세금탈루·논문표절·부동산투기가 고위 공직 배제 원칙으로 안착되는 듯했다. 문재인정부는 여기에 음주운전과 성범죄를 추가해 공직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 윤리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 인사청문회가 지나친 흠집 내기로 흐르는 것은 청문회 취지에 맞지 않는다. 인사청문회법은 청문위원이 허위사실을 진실인 것처럼 말하거나 위협 또는 모욕이 될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그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후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항이다.

그런데 주식 거래 횟수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한 청문위원은 이 후보자에 대해 “판사는 부업이고 재판은 뒷전”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야당 대변인은 “헌법재판소 결정문도 어차피 배우자가 대신해 줄 것”이라고 논평했다. 모욕이 될 발언들이다. 야당은 청문회에서 제기된 주식 거래 의혹을 검찰에 고발했고 후보자는 임명되더라도 수사를 받아야 할 상황이다.

한 변호사 단체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이 후보자가 갈 곳은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서울구치소”라는 입장을 냈다. 막말 수준이다. 전수안 전 대법관은 며칠 전 “‘부실한 청문회’와 언론이 빚어낸 프레임을 ‘부실한 후보’ 탓으로 호도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법정 밖 세상에는 유죄추정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 이 법칙에 따라 (이 후보자를) 반대하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무죄추정 원칙은 헌법에 명시돼 있다.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유죄가 확정될 때 사건이 알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 청문위원들이 공직 후보자의 유죄를 단정해서야 되겠는가. 유죄추정은 인권 침해일 뿐 아니라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청문회 본연의 기능은 검증이다. 낙마가 아니다. 국민의 주목을 받기 위해, 정파적 이익을 위해 원칙을 저버려선 안 된다.

강주화 문화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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