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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천종호] 계약이 돼버린 언약, 결혼



절대 깰 수 없는 약속인 언약 깰 순 있되 배상해야 하는 계약 언약서 계약으로 변질된 결혼 계약의 의미마저 점차 퇴색 인간사회의 수많은 문제는 바르지 못한 혼인관계서 비롯 위기의 신호음이 울릴 때 서둘러 바로잡아야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나님은 순서상 아담을 먼저 창조하신 다음 ‘돕는 배필’로 하와를 창조해 두 사람을 짝지어 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혼인관계의 존재의미를 찾는다. 그런데 아담이 먼저 만들어지고 하와가 돕는 배필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중점을 두게 되면 극단적으로 여필종부(女必從夫) 사상에 이르는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하나님이 평등하게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혼인관계로 인해 그 평등관계가 깨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돕는 배필의 의미는 부부가 ‘서로’ 돕는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돕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아담을 창조하심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온전히 갚는 길은 하나님과 아담 자신을 제외한 타자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그 타자가 바로 ‘돕는 배필’인 하와다. 정신과 의사이자 신학자인 티머시 R 제닝스는 “아담은 자신을 내주고 희생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하와는 아담의 이타적 사랑의 수혜자로서 지음을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돕는다는 의미는 내게 어떤 유익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유익을 베풀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 열매를 따 먹지 말라’는 법을 주셨으나 아담과 하와는 그 법을 위반했다. 이 신화는 인간이 ‘개인적으로’ 자신이 만든 법이나 약속조차 위반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자신을 창조한 신의 법도 위반했는데 자신이 만든 법은 오죽하겠느냐는 것이다. 한편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것은 하와의 권유 때문이었고, 하와가 법을 위반한 것은 사탄의 유혹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기야 어떻든 법을 위반한 당사자는 아담과 하와 자신이라고 할 것인데, 두 사람은 그에 따른 책임을 자신이 지려고 하지 않고 타자에게 돌려버렸고, 이는 인간 상호 간에 책임을 서로 전가하는 시초가 되었다. 이로 인해 아담과 하와의 혼인관계에는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다. 결국 성경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 개인’과 혼인관계를 출발점으로 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의 비극은 ‘법 위반’과 ‘책임전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예수의 말씀처럼 성경은 혼인관계를 언약관계로 본다. 인간은 관계를 맺을 때 약속을 한다. 약속에는 절대 깰 수 없는 ‘언약’과 깰 수는 있되 약속을 어긴 자의 배상이나 보상이 뒤따르는 ‘계약’이 있다. 남녀의 혼인관계는 한때 ‘언약’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점점 ‘계약’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고, 최근에는 그러한 계약의 의미조차 없어져 찰나적 만남을 즐기려는 사람이 늘어가는 추세다. 언약이 계약이 되고, 계약이 찰나적 만남으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에는 병든 개인과 병든 관계만이 남게 될 뿐이다.

부부는 사랑을 전제로 언약을 맺지 계약을 맺지는 않는다. 건강한 혼인관계의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를 무렵에는 언약관계가 계약관계로 변질되면서 ‘권력과 돈과 성’이라는 우상이 수면으로 떠오른다. 필자는 4년6개월간 이혼 관련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는데,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은 ‘성격 차이’와 ‘폭력 등 부당한 대우’였다. 성격 차이를 느끼고 부당한 대우를 당한다는 것은 부부관계가 평등한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권력적 관계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높은 이혼 사유는 외도를 포함한 부정행위다. 또 이혼 관련 사건의 판결에는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로 ○○원을, 재산분할로 ○○원을 지급하라’가 기본적으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돈으로라도 위로를 받겠다는 마음이 깔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부관계에서 권력과 돈과 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하면 혼인관계에 위기가 닥쳐왔음을 즉각 깨닫고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또 상대방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도 묵과하거나 부창부수하는 것은 언약공동체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임을 인식하고 도덕 재무장을 해야 한다. 이를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부부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치명적 손상을 입는다. 어떤 청년이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하여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의 부모님 관계를 보니 결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위기 청소년 중에는 부모의 갈등으로 정신심리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고 부모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들의 뿌리는 모두 건강하지 못한 부부관계에 있다.

인간사회의 수많은 문제는 올바르지 못한 혼인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혼인관계를 폐기하거나 다른 제도로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혼인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것만이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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