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윤석(51)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은 평단에서 후한 평가를 받았다. 불륜이라는 식상한 소재를 통해 ‘진정한 어른이란 무엇이냐’는 주제의식을 이끌어내는 흐름이 신선했다. 특히나 여성을 다루는 깊이 있는 시선과 섬세한 연출이 돋보였다. ‘김윤석의 재발견’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다만 흥행 면에서는 다소 기대 이하였다.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는 2주간 관객 26만명을 들이며 손익분기점(80만명) 도달에 사실상 실패했다. 그럼에도 김윤석은 이번 작품을 통해 연출 역량을 여실히 입증했다. 모든 캐릭터가 생생히 살아 숨 쉬도록 만든 건 배우 출신 감독이 지닌 장점이었다.
연극 연출 경험이 있는 김윤석은 오래전부터 영화 연출을 준비해 왔다. ‘미성년’을 완성하는 데만 해도 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개봉 전 만난 그는 “카메라 뒤에 서보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더라. 연기와 연출에는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고 흡족해했다. 향후에도 두 분야를 병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김윤석과 마찬가지로, 감독으로 깜짝 변신한 배우들이 적지 않다. 김윤석과 절친한 하정우(본명 김성훈·41)도 대표적인 사례다. 자신만의 유머 코드를 십분 살린 저예산 코미디 ‘롤러코스터’(2013)로 출사표를 던진 그는 10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투입한 ‘허삼관’(2015)으로 연출에 대한 욕심과 애정을 보여줬다.
박중훈(53)은 엄태웅 김민준을 주연으로 기용한 ‘톱스타’(2013)로 감독 데뷔를 했다. 여성 배우들도 두각을 드러냈다. 문소리(45)는 중견 여배우의 평범한 일상을 다룬 ‘여배우는 오늘도’(2017)를, 추상미(46)는 북한 전쟁고아들의 발자취를 따라간 ‘폴란드로 간 아이들’(2018)을 각각 선보였다.
연출작 개봉을 기다리는 배우들도 여럿 된다. 차인표(52)는 다음 달 개봉 예정인 ‘옹알스’의 제작과 공동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12년간 21개국 46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한국 코미디를 전파한 넌버벌(non-verbal) 코미디팀 옹알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부문에 초청됐다.
정진영(55)은 연출 데뷔작 ‘클로즈 투 유’ 공개를 앞두고 있다. 자신이 확신하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 상황 속에서 삶의 진실을 찾아 나서는 형사(조진웅)의 이야기로, 올해 개봉 예정이다. 장편 연출 데뷔를 신중하게 준비 중인 정우성(46)은 무협 액션물 ‘에이전트 선비’(미정) 등 다양한 작품을 검토하고 있다.
연기자로서 절정에 도달한 이들이 연출이라는 낯선 분야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곡숙 영화평론가는 “작품 전체를 총괄하며 자신의 작품세계와 가치관을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들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도 “연기를 아무리 잘해도 작품은 결국 연출에 의해 좌우되므로, 배우로서 본인이 주도권을 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배우 출신 감독의 작품들은 대체로 세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서 평론가는 “연기 경험을 토대로 인물 간의 심리나 관계를 표현하는 데 강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작품들이 지닌 한계는 대중적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평론가는 “배우일 때와 감독일 때 얻게 되는 관객의 기대치가 크게 다르므로 연출작 흥행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