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는 때로 기적이 일어난다.”
15년 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AC 밀란에 1대 4로 패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의 하비에르 이루레타 감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굳건한 믿음에 보답하듯 데포르티보 선수들은 2차전에서 4대 0 대역전극을 써내며 역사에 남았다.
벼랑 끝에 몰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자들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까지 무려 네 팀이 올라오며 강세를 보였던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이 준결승에서 동시에 탈락할 위기에 놓였다. 2일(한국시간) 열린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 리버풀 FC는 FC 바르셀로나에 0대 3으로 완패했다. 또 다른 프리미어리그 팀인 토트넘 홋스퍼도 전날 AFC 아약스와의 대결에서 0대 1로 졌다.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더블 우승을 노리는 리버풀은 이날 바르셀로나의 간판스타 리오넬 메시에게 멀티 골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메시는 후반 들어 추가 골과 쐐기 골을 뽑아내며 프로 무대 통산 600호 득점에 도달했다.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버질 반 다이크를 비롯해 두세명의 수비수가 달라붙었지만 제대로 묶어내지 못했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메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고 탄식했다. 리버풀 출신인 루이스 수아레스도 선제골을 터뜨리며 친정팀을 침묵시켰다.
리버풀이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결승 티켓을 따내기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하다. 2차전이 열리는 홈구장 안필드에서 실점 없이 네 골 이상 넣어야만 결승에 진출할 수 있다. 만약 리버풀이 1골이라도 내준다면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5골을 넣어야 한다. 클롭 감독은 “어렵겠지만 도전해야만 한다”고 했다.
아약스에 1실점만을 내준 토트넘은 리버풀보다는 상황이 낫다. 원정에서 치를 2차전에서 실점하더라도 어떻게든 이기기만 하면 결승에 갈 수 있다. 경고 누적으로 첫 경기에 나오지 못한 손흥민이 함께하는 만큼 공격력도 배가 된다.
1, 2차전을 홈 앤드 어웨이로 치르는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특성상 두 번째 경기에서 승부가 종종 뒤집어지곤 한다. 이번 시즌 8강 팀 가운데 절반은 16강 1차전에서 패한 후 2차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올라왔다. 리드를 잡더라도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다만 3골 차로 뒤처지다 역전한 사례는 흔치 않다. 유럽 클럽대항전이 1992년 챔피언스리그로 개편된 후 단 세 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바르셀로나는 주인공도 희생양도 된 적이 있다. 바르셀로나는 2016-17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원정 1차전에서 파리 생제르맹에 0대 4로 패한 뒤 2차전에서 6대 1 대승을 거두며 ‘캄프 누의 기적’을 만들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 8강전에서 AS 로마를 4대 1로 먼저 꺾고도 2차 원정전에서 0대 3으로 지며 원정 다득점에 따라 탈락했다. 이를 기억하고 있는 메시는 승리 후에도 “4대 0으로 이기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며 “아직 시합은 끝나지 않았다”고 자만심을 경계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