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을 앞두고 류현진(LA 다저스)이 인터뷰에서 “20승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상당수 팬들은 반신반의했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거듭된 부상에 따른 내구성과 30대 초반의 나이대에 나타날 구속 저하 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류현진의 기량에 의문부호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기를 치를수록 약점은 줄이고 강점을 극대화하는 뛰어난 마운드 운영의 묘가 절정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저스의 에이스에서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선발 투수 반열에 오를 기세다.
류현진은 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의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9이닝 동안 6개의 삼진을 잡고 4피안타 무실점으로 9대 0 승리를 이끌었다. 완봉승은 빅리그 진출 두 번째이며 2013년 5월 29일 LA 에인절스전 이후 6년 만이다. 내셔널리그 전 구단을 상대해 승리를 거두는 겹경사도 맞았다.
류현진은 이날도 스트라이크존 곳곳을 찌르는 제구력과 속구 변화 등으로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했다. 5회까지는 누상에 주자를 한 명도 내보내지 않은 퍼펙트피칭을 이어갔다.
류현진은 이날 경기에서 그동안 지적됐던 약점들을 사실상 모두 지웠다. 먼저 류현진은 올 시즌 개막 이후 5경기 연속 홈런(6홈런)을 맞았다. 승을 거뒀음에도 잇단 피홈런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일 샌프란시스코전(8이닝 1실점)에 이어 애틀랜타전에서도 홈런을 맞지 않았다.
천적 관계도 극복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애틀랜타의 프레디 프리먼은 류현진에게 11타수 6안타로 대단히 강한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이날은 9회 삼진을 포함, 4타수 무안타로 완벽히 봉쇄했다. 특히 9회 프리먼에게 던진 마지막 공은 93마일(약 150㎞)에 달할 정도로 끝까지 힘이 넘쳤다. 여기에 두 경기 연속 8이닝 이상을 소화하면서 지난달 9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사타구니 부상으로 자진강판한 이후 부상 후유증도 없음을 몸소 증명했다.
강점은 더욱 공고해졌다. 류현진은 국내프로야구와 달리 미국에서 강속구 투수로 거론되지 않는다. 다양한 변화구와 제구력, 체인지업으로 승부하곤 하는데 올해는 그 정교함이 최고 수준에 올랐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볼넷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류현진은 올시즌 44⅓이닝을 던져 단 두 개의 볼넷을 내줬다. 9이닝당 볼넷수 0.41개로 미네소타 트윈스의 호세 베리오스(1.35개)에 크게 앞선 리그 전체 1위다. 또 이 기간 삼진은 45개를 잡아 볼넷 1개당 삼진 비율도 22.5로 리그 2위 맥스 슈어저(워싱턴 내셔널스, 9.0)를 두 배 이상 뛰어넘는다. 82⅓이닝 동안 15개의 볼넷을 내준 지난해에도 볼넷이 적은 수준이었는데 올해 제구력은 경이적일 정도라는 평이다.
볼넷을 주지 않다보니 주자가 쌓이지 않아 위기와 대량실점이 적다. 류현진은 올시즌 7경기에 등판해 단 한번도 3점 이상 점수를 내준 적이 없다. 유일하게 패했던 지난달 21일 밀워키 브루어스전도 2실점에 그쳤다. 평균자책점은 2.03까지 떨어지며 리그 전체 5위에 도달했다.
류현진은 6회초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내주고 퍼펙트 행진이 깨졌을 때, 그리고 마지막 타자 프리먼을 삼진으로 잡고 완봉승을 달성했을 때 홈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류현진은 경기 뒤 “상대 타선이 좋았지만 첫회 점수가 나와 빠른 승부를 가져갈 수 있었다”며 타자들에게 완봉승의 공을 돌렸다. 이어 “5일마다 동료들이 의지할 수 있는 투수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의 피칭을 보는 건 즐겁다. 압도적인 밤이었다”고 칭찬했다. 동료인 저스틴 터너도 “류현진은 대단히 과소평가된 투수다. 지난해 (사타구니) 부상이 아니었다면 사이영상 후보가 됐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