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 예능 기대작이 맞붙는 일요일 저녁 6시45분. MBC에서는 지난 19일 신선하고 독특한 신규 프로그램이 전파를 탔다. 시작부터 특이했다. 텅 빈 운동장에 한 할머니가 등장했고, 이 할머니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써내려간 자작시 ‘공부’를 낭독했다.
“글도 모르고/ 달력도 못 보다/ 아무 것 모르다// 공부를 배우니/ 나는 살것네// 버스도 혼자 타고/ 아들에게 전화도 하고// 나는 살것네.”
프로그램 제목은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의 준말인 ‘가시나들’이었다. 방송의 배경이 되는 곳은 경남 함양의 작은 마을.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지 못해 한글을 깨치지 못한 할머니들이었다. 제작진은 늦은 나이에 한글수업을 받기 시작한 할머니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고, 연예인들은 손자 손녀처럼 할머니들의 공부를 거들었다.
연예인들이 시골 체험에 나선 상황을 전하거나, 시골 어르신들의 소탈한 모습을 예능의 소재로 활용한 건 자주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가시나들은 색다른 지점이 많았다. 할머니들을 희화화하거나 ‘볼거리’로만 소비하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굴곡진 삶을 통해 우리네 어르신들의 신산했던 인생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문학 수업으로 진행된 26일 방송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송에서는 미소를 머금게 했다가 어느 순간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장면이 잇달아 등장했다.
가시나들 외에도 요즘 방송가에는 자극적인 재미는 덜어내고 일반인의 삶을 담백하게 풀어낸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고 있다. tvN을 통해 매주 화요일 밤 11시에 방영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대표적이다. 프로그램은 방송인 유재석 조세호가 우연히 만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퀴즈를 내고, 연속해서 정답을 맞히면 상금까지 주는 구성을 띠고 있다.
유퀴즈는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전파를 탔다가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지난 4월부터 두 번째 시즌을 내보내고 있다. 제작진은 유퀴즈를 “사람 여행”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첫 번째 시즌이 다소 단조로운 느낌이었다면, 이번 시즌은 기존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시민들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때로는 먹먹한 감동까지 선사한다.
그렇다면 가시나들이나 유퀴즈의 선전이 방송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전문가들은 이른바 ‘청정 예능’ ‘힐링 예능’이라고 불리는 콘텐츠가 갈수록 각광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재 예능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면면이 천편일률적인 느낌이 없지 않다”며 “자극적인 편집이나 재미를 가미하지 않으면서도 시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전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이 앞으로 더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