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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대의 연극 관객의 삶 바꿀 경험 줘야”



“넷플릭스를 통해 집에 편하게 앉아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공연을 보는 건 이제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 됐어요. 이런 시대에 연극이 살아남으려면 관객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12년 만에 한국을 찾은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 연출가 로베르 르빠주(62·사진)는 연극의 미래에 대한 견해를 이렇게 풀어놨다. 27일 서울 중구 주한캐나다대사관에서 열린 연극 ‘887’ 간담회 자리였다. 29일부터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이 1인극은 그의 호언처럼 연극과 삶의 본질을 아우르며 잊지 못할 감각을 선사한다.

르빠주가 택한 소재는 ‘기억’이다. 작품의 제목은 1960년대 자신이 유년기를 보낸 캐나다 퀘벡 시티 머레이가 887번지의 아파트를 뜻한다. 무대에 선 그는 본인의 기억을 훑어가며 기억의 메커니즘에 대한 묵직한 질문들을 던진다. 르빠주는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는 작품”이라며 “우리 뇌가 무엇을 기억하고, 왜 기억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한국 무대에 배우로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극 ‘안데르센 프로젝트’(2007) 때 내한했던 르빠주는 혁신적 무대 기술과 창의적 이야기로 현대 연극의 경계를 확장한 거장으로 통한다. ‘달의 저편’(2003, 2018), ‘바늘과 아편’(2015) 등을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번 극에도 다채로운 테크놀로지가 활용됐다. 아파트 세트와 아기자기한 미니어처 모형들은 그의 추억을 직접 들여다보는 듯한 생동감을 선사한다. 그는 “기술들을 간소하고 시적인 형태로 접목했다”며 “다양한 미니어처를 활용한 만큼 인형극과도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개인적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기억과 긴밀히 연관을 맺고 있는 역사를 함께 풀어냄으로써 인간과 연극, 사회에 대해 다층적으로 고민하게 한다는 점이 뜻깊다. 그가 살던 퀘백은 프랑스와 영국의 지배를 번갈아 받았었다.

르빠주는 “과거를 끊임없이 기억하게 해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예술의 역할”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퀘벡은 계급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갈리는 등 갈등이 계속됐다. 이런 이야기가 현대 다른 세계의 일들과도 연결고리가 될 것 같다”고 했다. 공연은 다음 달 2일까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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