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신명기 6장의 이른바 ‘쉐마’ 구절을 통해 오직 유일한 하나님만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기도나 세례 찬양 행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와 연관을 맺는 것은 유례가 없었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는 달랐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대등한 예배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가 경배의 대상이 된 것은 부활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예수 부활 이후 짧은 시간 안에 신자들이 하나님과 예수를 예배했다는 게 책의 요지다.
저자 래리 허타도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 신약학 명예교수는 초기 기독교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그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예배 의식에서 예수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조사하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가 유대인과 이방인 기독교 공동체의 예배 대상에 포함됐다고 증명한다. 저자는 기독교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의 신념이나 교리 대신 초기 신자들의 예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로마시대의 영향 아래 있던 당시에는 의식(儀式)의 문제가 더 중요했다고 말한다.
오늘의 신자들에게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한 예배의 대상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는 삼위일체 교리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은 당시 기독교인들은 한 분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을 예배하려면 엄청난 결단이 필요했다.
저자는 이 같은 배경 속에서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중심으로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매우 일찍부터 예수를 하나님으로 예배했으며 실제로 기도 고백 세례 성찬 찬송 예언 등에서 이런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입증한다.
‘마라나 타’(고전 16:22·새번역)는 아람어로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란 뜻을 갖고 있다. 이 말은 이방인으로 구성된 헬라어권 교회에서 자주 사용됐다. ‘마(mar)’는 기원의 대상이 되는 예수를 가리킨다.
다른 예를 보자. 예수를 향한 예배의 표현으로 ‘부르다’는 용어도 사용됐다. ‘부르다’는 구약에서 여호와를 부르는 의미로 사용됐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은 회심 전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하러 다녔다.”(9:14·21). 이 구절은 당시 신자들이 이미 예수를 여호와로 불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놀랍게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0:13)고 쓰면서 담대한 변화를 보여준다. 세례에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일이 보편화돼 있었다. 사도행전엔 이를 보여주는 다수 구절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렇게 초기 기독교인이 하나님과 예수를 ‘이중적으로’ 예배했다고 분석하면서, 이는 당시 기독교인들의 강력한 종교적 체험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요한복음이 밝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5:23)는 확신이 형성된 것이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