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미분류  >  미분류

[여의춘추-라동철] SK의 사회적 가치 경영



기업이 영리활동하며 환경과고용 등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여한 가치 계량화해 첫 공개
측정 시스템 계속 보완하고 사회적 가치 높여 기업과 사회 상생하는 경제의 물꼬 트길


SK그룹이 지난주 사회적 가치 측정 결과를 발표했다. 기업이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여한 정도를 돈으로 환산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주력 3개 사의 실적을 공개했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창출한 사회적 가치는 9조5000억원, SK텔레콤은 1조6000억원, SK이노베이션은 1조1000억원이라고 했다. 사회적 가치란 개념은 낯설지 않지만 이를 측정해 계량화했다는 게 눈길을 끈다.

기업 본연의 목적은 이윤추구다.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거나 유통시키는 등의 경제 활동을 통해 최대한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한다. 그 결과물인 당기순이익 등 경제적 가치는 수치화가 가능해 재무제표에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 가치는 기업의 역할을 다른 차원에서 들여다본 개념이다. 영리활동을 하는 와중에 환경, 고용, 인권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돈을 많이 벌었더라도 그 과정에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소비자나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하고, 일자리를 없앴다면 좋은 기업이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오래 전 일이지만 나이키가 저개발국가 아동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축구화를 생산했다가 불매운동 대상이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환경, 보건, 빈곤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책임을 제품과 서비스에 결합시켜 경제적 가치와 공익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코즈 마케팅이 유행하는 것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사회적 가치를 외면하는 기업들은 갈수록 설자리가 좁아질 것이 틀림없다. 기업들이 맹목적인 이윤 극대화 경영에서 벗어나 사회적 가치에 눈길을 돌려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사회적 가치는 계량화하기 어렵다. 가치를 창출했다고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SK는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2017년 학계, 관계사, 글로벌 기업 등과 협력해 측정 시스템 개발에 들어갔다. 3개 사의 사회적 가치 실적 발표는 그 첫 결과물인 셈이다.

SK는 기업 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3개 분야로 나눠 측정해 합산했다. 하나는 경제 간접 기여 성과로 고용, 배당, 납세 등 기업 활동을 통해 경제에 간접적으로 기여한 가치다. 또 하나는 제품 개발·생산·판매를 통해 발생한 비즈니스 사회 성과로 환경, 사회, 거버넌스로 세분화해 측정했다. 생산공정을 개선하거나 친환경 제품을 취급해 환경에 기여한 성과,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동반성장을 추구해 창출한 가치, 지배구조나 법 위반 사항 개선 등을 통한 거버넌스 성과 등을 반영했다. 사회공헌 사회성과는 기부, 자원봉사 등 지역사회 공동체에 대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창출한 가치다.

SK가 제시한 측정 모델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경제·사회학자나 사회적기업 관계자 등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 모델을 일반화하는 것은 아직 무리다. 하지만 SK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업이 돈벌이에만 급급해 하지 않고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노력하겠다고 하는데 환영하고 격려해야 마땅한 일 아닌가.

SK그룹은 3개 사를 시작으로 16개 주요 관계사의 사회적 가치 측정 결과를 재무제표 공시하듯 매년 순차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또 관계사 성과 평가 시에 사회적 가치 측정 결과를 50% 반영하기로 했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등한 비중의 두 축으로 삼아 기업을 경영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SK는 이런 흐름을 확산시키기 위해 28일 사회적 가치에 관심이 있는 기업, 시민단체, 학자 등이 참가해 성과와 전망을 공유하는 ‘소셜밸류커넥트(SOVAC) 2019’ 행사를 열기도 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이날 “사회적 가치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보다 기업 모든 전략, 고객들도 이런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어떻게 내는지 중요시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공감이 가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SK의 행보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착한 기업 신드롬’에 편승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회적 가치 경영을 주창하지만 정작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 하청·협력 업체에 대한 불공정 거래, 사익 편취 등에 대한 개선 요구에는 소극적으로 응하는 걸 보면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SK로서는 진심을 몰라준다며 서운해 할 수도 있지만 의구심을 풀어줘야 할 책임은 SK에 있다. 진정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윤리 경영, 준법 경영은 물론이고 그 이상이 필요하다. 쉽게 개선할 과제도 있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제도 있을 게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게 쉬운 길이 아니다. 경제적 가치를 중시하는 주주들과 충돌할 수도 있다. 측정 시스템을 보완하면서 뚜벅뚜벅 걸어가길 바란다. 사회적 가치 경영의 깃발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SK의 시도는 기업과 사회가 상생하는 경제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위대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