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모씨는 어느 날 딸(7)의 눈꺼풀과 콧등, 입가에 생긴 흰 반점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딸이 걸린 백반증은 치료가 잘 안되고 점점 커진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면 어쩌나’하며 늘 마음이 불안했다. 다행히 백반증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알게 돼 주 2회씩 6주간 레이저 치료를 받고난 지금은 말하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나아졌다. 최씨는 백반증이 눈 코 입과 같이 손으로 자주 문지르는 부위에 잘 생기고 반복적인 자극과 마찰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아이의 생활습관을 바꾸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
직장인 김모(35·여)씨는 고등학생 때 백반증 진단을 받았다. 5년간 꾸준히 광선(자외선) 치료를 받으며 절반 정도는 개선됐지만 양쪽 눈두덩과 눈물고랑에 생긴 증상은 잘 없어지지 않았다. 얼룩덜룩한 자신의 얼굴을 호기심 어른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는 고역일 수 밖에 없었다. 흰 반점을 가리기 위해 항상 진한 메이크업을 하고 출근해야 했다. 그러던 중 지인의 권유로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에서 ‘미세펀치이식술’ 치료를 받고 거의 정상 피부에 가까워졌다. 김씨는 “애써 진한 화장으로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어져 행복하다”고 했다.
백반증은 피부의 색소세포(멜라닌세포)가 소실돼 피부에 하얀 반점이 생기는 병이다. 통증이 있거나 건강에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외관상 하얗게 보이는 부분이 대인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삶의 질 또한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특히 피부색이 짙은 사람은 백반증이 더욱 도드라져 보일 수 있어 큰 스트레가 된다.
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백반증 진료 환자는 지난해 6만2933명으로 2013년(5만3532명)에 비해 5년새 약 17.6% 증가했다.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백반증클리닉 배정민 교수는 “백반증 발생이 늘고 있다기보다는 그동안 치료를 포기하고 있던 환자들이 최신 치료법이 소개되면서 관심을 갖고 조금씩 병원을 찾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상당수는 아직도 ‘백반증=불치병’이라는 편견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6년 대한백반증학회가 백반증 환자 1123명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65%가 정서적 부담을 갖고 있고 48.8%는 일상 및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했다.
배 교수는 “백반증은 치료가 어렵고 치료 후에도 재발이 잦기 때문에 꾸준한 치료와 관리가 중요하다”면서 “환자 상태에 맞는 치료법을 선택해 적극 치료를 받는다면 상당수는 치료가 가능하고 환자들의 삶의 질도 크게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반증은 유전적 소인(가족력), 항산화 능력(면역기능) 감소, 지속적인 자극과 마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면역체계가 자신의 멜라닌세포를 공격해 생기는 것. 성별이나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심한 경우 몸의 90% 이상이 하얗게 변하는 ‘범발성 백반증’도 드물게 발견된다. 고인이 된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이 여기 해당된다.
손가락 마디나 눈·코·입 주변, 발등, 팔꿈치, 무릎 앞부분 등 손으로 만지거나 마찰이 많은 부위에 자주 발생한다. 배 교수는 “대개 50% 정도는 자외선, 엑시머레이저 등 비수술 치료로 주 2회씩 6~12개월 꾸준히 치료받으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여기에 면역조절 치료제를 병용하면 치료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방법으로도 호전되지 않는 ‘불응성 백반증’은 수술 치료가 필요하다. 수술은 1년 이상 피부 증상이 번지지 않는 상태에 있어야 가능하다. 비수술 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들의 25% 정도는 수술을 통해 호전된다. 다만 나머지 25%는 치료 자체가 어려워 노출 부위를 화장품으로 가리는 치료를 통해 최대한 번지지 않게 하는 게 최선이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수술 치료는 ‘흡입물집표피이식술’이다. 허벅지 안쪽의 정상 피부에 주사기 형태 흡입기를 붙이고 압력을 걸면 볼록한 물집이 만들어지는데, 이걸 떼어내 백반증 병변에 옮겨다 심는다. 치료 효과가 대체로 좋은 편이나 하얀 반점의 크기 만큼 흡입물집이 필요하기 때문에 광범위한 백반증에는 적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흡입물질을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흠이다.
배 교수는 이러한 기존 방식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치료법인 ‘비배양표피세포이식술’을 국내 처음으로 개발했다. 2015년쯤 인도에서 배워와 국내 환자에 적용하고 있다. 이는 정상 피부에서 채취한 표피를 단순히 가져다 붙이는 게 아니라 세포 단위로 분리해 이식하는 방식이다.
배 교수는 “물집을 만드는 과정은 기존 흡입물집표피이식술과 비슷하며 세포를 분리한 뒤 효소 처리를 하면 끈적끈적한 젤 형태로 바뀌는데, 이를 병변에 발라주는 점이 다르다”면서 “손바닥 보다 큰 백반증 치료에 적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정상 피부에서 채취한 표피의 5~10배까지 넓은 병변을 한번에 치료할 수 있다. 실제 배 교수는 2015~2019년 난치성 백반증 환자 30명에게 이 방식을 적용한 결과 83%에서 치료에 성공했다. 다만 아직 연구 목적으로만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조만간 신의료기술 신청을 통해 국내 보급에 나설 계획을 갖고 있다.
이 밖에 크기가 작은 백반증에 기존 ‘미세펀치이식술(귀 뒤의 정상 피부를 떼와 옮겨 심는 방식)’을 개량한 방법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역시 2015~2017년 230명에게 적용한 결과 78.7%에서 치료 효과를 얻었다.
백반증 예방과 관리를 위해선 생활습관을 고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백반증은 자가면역질환이라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약재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게 좋다. 또 흡연은 체내 나쁜 물질인 ‘활성산소’를 쌓이게 해 멜라닌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에 백반증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눈을 비비거나 화장 지울 때 세게 문지르는 행동도 안 좋다. 지나친 햇빛 노출도 삼가야 한다. 백 교수는 “백반증은 그동안 치료가 잘 되지 않는 병으로 알려진게 사실이지만 전문 의료진과 면밀한 상담을 통해 병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환자별로 장기적인 맞춤치료 계획을 세운다면 지금보다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