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며칠 전 목사님을 찾아뵀다고 하시더군요. 불쌍한 제 어머니께 위로의 말씀으로 힘과 용기를 주시고 계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주 수요일이면 제가 구속된 지 만 25년 되는 날입니다. 젊어서는 남편에게 고통당하시고 늙어서는 자식에게 고통당하시면서도 저리 애달파하는 모습을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듭니다.”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장 문장식(84) 목사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사형수 김모(54)씨에게 최근 받은 편지 내용이다.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3일 만난 문 목사는 사형수들에게 ‘믿음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들을 36년 가까이 보살피며 복음을 전한 문 목사는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늘 옥중 편지를 읽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문 목사는 1990년대 초 김씨가 형을 선고받으러 가던 날을 잊지 못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쓰러져 “네가 무슨 죄가 있느냐, 모두 부모 죄다, 못 가르친 죄, 가난한 죄”라고 오열하며 구치소 계단을 굴렀다. 김씨는 술에 취해 어머니에게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를 숨지게 했다.
서울구치소 책임지도 목사였던 문 목사는 간첩 혐의로 1986년 사형을 선고받은 김영희(당시 24·여)씨도 또렷이 기억했다. 가난 때문에 외삼촌을 따라 일본에 갔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꼬임으로 북한에 다녀왔고 남한에서 다방을 경영하며 간첩 활동을 했다. 그는 사형 집행 때 “나는 가난 때문에 이렇게 가지만 여러분은 예수 믿고 모두 천국에서 만나자”며 기도했고 안구를 기증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교도관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사형수들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시간은 30분 남짓. 그 순간을 조금 더 살기 위해 “물 한 모금만 주십시오”라고 요구하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하루는 사형장에서 검사가 줄행랑을 친 적도 있다. 초등학교 동창이 사형집행장에 오는데 차마 볼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직폭력배 두목이 아닌데도 두목인 것처럼 위장해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장으로 향한 이도 있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파송 목사였던 문 목사는 1983년 법무부 종교위원 제도가 생겨나며 서울구치소를 드나들었다. 그곳에서 인간은 누구나 교화될 수 있음을 깨닫고 ‘태양의 집’을 열어 출소자가 잠시 지낼 곳을 제공했다. 88년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과 함께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를 만들었다. 한국은 1997년 12월 30일을 끝으로 사형을 집행한 일이 없는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가 됐다. 그러나 형법에선 여전히 사형을 형벌로 규정하고 있다. 문 목사는 이의 폐지를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다시금 제기하려 한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 9:6) 문 목사가 마음에 품은 성경 구절이다.
문 목사는 “죄인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하나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죄인이란 이유로 처형할 수는 없다”며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기에 누구도 살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