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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6·29 선언과 美 시민법 가결



29일은 한국 현대사에 획을 그은 6·29선언의 날이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며 국민의 뜻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라며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군인 출신 대통령에게, 역시 군 출신 대통령 후보가 권고하는 형식의 선언이 나온 것이다. 그 원본을 살펴보면 “인간의 존엄성”, “기본적 인권”, “언론자유”, “사회 각 부문의 자치와 자율”, “대화와 타협의 정치풍토” 등 민주 사회의 요소들이 두루 포함돼, 묘한 느낌을 부른다.

흥미롭게도 6월 29일은 1964년 미국 시민법(Civil Rights Act)이 미 상원에서 통과된 날이기도 하다. “민간영역에서의 인종차별은 국가가 규제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오면서 유명무실해진 기존 시민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복원하려는 것이었다. 얼굴색이 다르면 한 식당에서 밥도 못 먹고, 한 버스를 타지도 못하고, 같은 학교에 다닐 수도 없던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 문화를 입법으로 없애려 한 것이니 미국판 6·29선언인 셈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정부에서 입안한 이 법안은 그가 암살된 뒤 린든 존슨 대통령 서명으로 발효돼 현재의 미국 다인종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미 양국의 ‘6·29선언’은 극복하려던 기존 질서 자체가 군부 독재와 인종 차별로 다른 것이니 직접 비교 자체는 무리이겠다. 하지만 이 ‘사회적 결정’이 나오기까지 두 사회가 어떤 방식을 택했는가 하는 대목에서는 유의미한 차이가 보인다.

한국판 6·29선언이야 직간접 체험한 일이니 익숙하다. 6월 10일과 26일의 전국 대규모 시위에서 국민의 목소리가 일제히 분출한 것이 ‘6월 항쟁’이고 그 큰 흐름에 밀려 군 출신 대통령과 후보가 직선제를 수용하고 국내 유수 대학 정치학과 교수들이 문장으로 만들어 냈다고 하는 것이 한국판 6·29선언이다. 이런 경험은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결정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국민 다수가 거리에 나서 목소리를 내고 지도자나 사회 시스템이 뒤늦게 응답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한국의 ‘광장민주주의’와 달리, 미국은 의회 내 ‘절차’를 따랐다. 대통령이 제출한 원안을 하원이 받아 ‘직장 내 인종 차별 금지’, ‘인종분리 금지구역의 확대’ 등 오히려 원안을 강화해 상원으로 넘겼지만 인종차별 금지에 반대하는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지금의 국내 제1야당의 모습처럼. 한 의원이 14시간 이상씩 발언하는 등 무려 63일간의 의사진행방해(filibuster)가 이어졌다. 이 긴 의회 정쟁을 73(찬성) 대 27의 표결로 끝낸 것이 클라우쳐(clouture)라는 의회 진행 절차이다. ‘토론 종결’이라는 의미의 이 절차는 소수당의 의사진행방해로 의안 논의가 끝도 없이 계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1887년 영국에게 처음 시작됐고 1917년 도입한 미국을 비롯,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다수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어쨌거나 미국 사회 민주화의 한 획을 그은 인종차별의 금지가, 진통은 있었지만 의회 제도 속에서 이뤄졌고 그 과정에 의회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절차적 시스템이 유용하게 작동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국회 공전이 장기화되고 있다. 30여 년의 짧은 역사에서 무려 두 번이나 민주 시민혁명의 모범적 사례를 세계에 알린 국민에 ‘송구한’ 마음으로 이제는 정치가, 합리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실행해 보임으로써 답할 때가 아닐까.

주영기 한림대 교수 (미디어스쿨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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