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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우신 목적은 복음전파… 목사 등 직분 주신 목표는 영혼 구원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앞줄 가운데)와 장경동 대전중문침례교회 목사(앞줄 오른쪽)가 지난해 8월 세계로교회에서 개최된 하계수련회에서 통성기도하고 있다. 세계로교회 제공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 전파다. 따라서 교회 내 모든 기관은 복음 전파를 위해 운영돼야 한다.

많은 교회가 성경공부 찬양모임 봉사활동 등의 사역을 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뤄지려면 기본적으로 복음 전파가 이뤄져야 한다.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죽어서 지옥 가는 영혼들에게 영원히 사는 길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은 이 땅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다.

왜 성도에게 직분을 주는가.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교사라는 직분을 하나님께서 주신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바로 영혼 구원이다. 그런데 직분자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소원에 도무지 관심이 없다면 예수님이 얼마나 섭섭해하시겠는가.

복된 인생이 되려면 개인이든 교회든 가정이든 기업이든 민족이든 하나님의 소원에 관심을 둬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이 저절로 임한다. 그런 교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역사가 일어난다.

반면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지 않는 교회는 그 어떤 방법을 시도하더라도 새롭게 될 수 없다. 원래의 목적을 잃은 교회는 이미 죽은 상태와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가졌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왜 성경을 공부하는가. 왜 제자훈련을 하는가. 그 안에 복음 전파가 없다면 무익하다. 복음 전파를 가르치지 않는 성경공부, 복음 전파를 배우지 않는 제자훈련은 본질을 잃은 화려한 지식에 불과하다.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명령을 저버리니 아무것도 아닌 것, 주보에 오타가 하나 생긴 것, 이름 하나 바뀐 것 갖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온다.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인지, 왜 직분을 주셨는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복음에 헌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교만하게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교회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한번은 새신자 가정에서 구역 모임을 갖는다고 해 설교하러 갔다. 방문에서 강아지가 깽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목사님께서 개를 싫어하시는 것 같아서 방에 가둬 놓았더니 이렇게 난리를 치네요.”

그래서 물었다. “선생님, 혹시 1박 2일 어디 가려고 하면 제일 먼저 뭐가 생각납니까.” “그야 물론 개밥이죠.” “어디 갔다가 늦게 들어오면 제일 먼저 뭐가 생각납니까.” “개가 생각납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인생에는 개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네요.” “네, 그렇습니다.” “인생이라는 판에 개가 큰 부분을 차지하면 뭐라고 합니까.” “개판이죠.”

속이 답답했다. “하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으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데 선생님이 하나님께 대한 정성을 개만큼이라도 취급했습니까. 개에게 관심을 가진 것처럼 하나님께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 못했습니다.”

개를 위해서라면 목욕도 시켜주고 옷도 사주고 발톱도 깎아주는 사람들이 어찌 된 영문인지 예수님이 부탁하고 또 부탁하신 그 명령, 복음을 전파하고 증인 되는 일은 게을리한다. “하나님인 내가 친히 너를 위해 대신 죽지 않았느냐. 그러니 너는 이제부터 복음을 전파하라!” 이와 같은 주님의 명령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개는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자들에게 성도라는 이름이 과연 걸맞은 것일까.

우리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지금까지 예수님의 소원에 관심을 갖고 살아왔는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명령대로 움직이고 있는가. 원래 목적대로 복음전파를 위해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명령은 쉬지 않고 내려오는데 거기에는 도무지 관심을 두지 않고 손에 쥐고 있는 것에만 관심을 쏟고 있지 않은가.

“농촌은 원래 복음 전파가 힘듭니다.” “도시 사람들은 강퍅해서 복음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말들에 절대 속지 말라. 모두 사단이 속삭이는 말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예루살렘에서도 기적과 이적이 나타났다. 예수의 ‘예’자만 꺼내도, 처형당한 사람을 추종하는 광신자나 정신병자 취급받던 험악한 분위기였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 복음의 능력이 임하면 영혼이 변화되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다.

부흥과 교회 성장은 온 성도들이 목사님을 중심으로 피 묻은 복음에 헌신할 때 나타난다. 하나님은 당신을 삶의 중심에 둔 자들을 사용해 그 일을 이루신다. 그가 아무리 약하고 연약할지라도 하나님께선 친히 능력을 채우셔서 그 사역을 감당케 하신다.

전도가 두려운가. 사도들을 기억하라. 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곧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적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갈릴리 촌놈이 만방에 다니며 복음을 전할 만한 능력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행하자 은혜와 기적이 일어났다. 기억하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는 분이시다.

전도를 위한 대화 이렇게… 영혼 존재 부정한 석가, 구원자 아닌 구도자

전도자: 석가모니는 제자 아난과 춘다에게 “네가 영혼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석가가 다시 말하기를 “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라며 영혼의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영혼을 믿지 않았던 석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극락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영혼도 없고 윤회설도 없다면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석가모니는 “영혼은 없지만, 재생은 있다”라며 망고나무를 갖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망고나무에 망고가 열리면 그 망고가 떨어져서 다시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떨어져서 또다시 열매를 맺으므로 원래 망고나무는 사라졌어도 망고는 계속 재생된다. 그러나 그 망고나무에 영혼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석가모니의 신앙 수호자로 불렸던 대표적인 제자는 사리불과 목련이었습니다. 사리불은 자신이 죽을 때가 가까워졌음을 알고 마지막으로 석가모니를 만났을 때 “우리는 환생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석존과 저 사이의 마지막 만남입니다. 더 이상의 만남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의 정치가 암베드카르는 간디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회개혁운동가입니다. 그는 불가촉천민 출신임에도 봄베이대학교 엘핀스톤 칼리지를 졸업한 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영국 식민지인 인도에서 노동부장관을 시작으로 1947년 독립 인도의 법무부장관, 인도 헌법기초위원회 의장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암베드카르가 이룬 가장 큰 공헌은 일생 불교와 석가모니의 생애를 연구해 1950년대 20만명밖에 되지 않던 인도의 불자들을 1억명까지 개종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는 불교의 핵심진리를 정리해 ‘인도로 간 붓다- 그의 삶과 가르침’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그 책에 의하면 석가모니는 영혼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석가모니는 영혼에 기초하는 종교가 무가치한 것이고 단지 미신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확고하게 생각했습니다. 그의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붓다는 영혼을 믿었는가. 그는 믿지 않았다. 그의 영혼설은 아나타나, 즉 무영혼설로 불려지고 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석가모니는 단 한 번도 자신을 구원자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마지막 유언에서도 자신은 어디까지나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자라고 말하며 ‘내가 깨달은 것은 여기까지지만 더 좋은 진리가 있다면 거기를 찾아가라’고 제자들에게 권면했습니다. 자기의 신상을 만들지도 말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유언했습니다. 김 선생님, 선생님은 예전에 불교를 믿었다고 하셨죠.

대상자1: 네, 그렇습니다.

전도자: 윤회설도 믿었습니까.

대상자1: 네, 당연히 믿었죠.

전도자: 지금 보니 김 선생님은 불교를 믿은 게 아니고 힌두교를 믿고 있었군요.

대상자1: 거 참, 알고 보니 황당하네요.

전도자: 성철스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열반송을 했습니다. “일평생 남녀 무리를 속여 미치게 했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미쳐 수미산보다 더 크구나. 산 채로 불의 아비지옥으로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한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렸구나.” 그리고 이런 유언도 남겼습니다.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죗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성철스님은 제자들과 잡지 기자가 보는 가운데 임종했습니다. 임종 직전 “석가는 원래 큰 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저 한없이 어리석은 남녀를 속이고 눈을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 발밑의 지옥은 괴로움이 끝이 없도다. 석가와 미타는 뜨거운 구리 쇳물을 마시고 가섭과 아난은 무쇠를 먹는다”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이처럼 성철스님은 운명 직전 영계(靈界)를 직접 보고 지옥의 석가와 달마, 가섭과 아난이 지옥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시로 묘사했습니다. 영계를 직접 보지 않고는 자기가 평생 섬겼던 석가를 도적이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계속)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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