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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감싸는 아름다운 성령 조각으로 재현”



장동근 목사의 작품 ‘사랑으로 피어나다(왼쪽)’와 ‘스티그마’. 오병이어교회 제공


장동근 목사는 한마디로 ‘분노가 이끄는 삶’을 살았다. 깊은 데서 솟구치는 분노가 그의 삶을 이끌었다. 늘 술에 취해 비틀거렸다. 지나는 이들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러다가 예수를 믿고 변화되었다는 뻔한 반전드라마? 아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는 신학교에 다니면서도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켜켜이 쌓인 상처는 쉽게 씻기지 않았다. 씻길 수 없다. 상처는 찢김으로 인한 결핍, 없음, 구멍이기 때문이다.

첫 결핍은 어머니의 손이었다. 어머니에겐 한쪽 손이 없다. 어머니 손은 처음부터 그랬다. 어머니의 결핍은 곧 그의 상처였다. “니네 엄마 갈고리 손이라며?” 놀리는 아이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때부터 세상은 싸워야 할 대상이었다. 가난한 형편 때문에 자주 셋방을 옮겼다.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때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버지가 떠난 뒤 더 이상 결핍될 것이 남지 않았을 정도로 가난해졌다. 두 번째 결핍은 아버지였다.

삼남매는 학교에 도시락 한 번 제대로 싸간 적 없다. 어머니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웠지만, 도시락을 싸줄 형편은 못되었다. 결핍은 상처가 되어 콤플렉스가 되었고, 상처는 곧 낙인이 되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그의 낙인은 작은 키다. 보이지 않는 낙인은 더 많다.

천안 오병이어교회에서 만난 그는 156센티미터에서 멈춘 키 그대로였다.

- 과거 알코올중독이었다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입학에 실패한 뒤 서서히 중독자가 되었어요. 일용직노동자로 3년을 보냈는데, 일이 끝나면 매일 밤 술만 마셨습니다. 분노를 잊고자 술에 취했죠. 동네에서 유명한 알코올중독자였어요. 공중전화박스를 부수고 다녔고, 어깨만 살짝 스쳐도 멱살을 잡았어요. 설령 그게 어린아이라도요.”

- 무척 심각한 수준이었네요.

“심지어 매일 악몽에도 시달렸어요. 흔히 ‘가위에 눌린다’고 하죠. 꿈속에서 누군가 계속 쫓아와 목을 졸랐어요. 교회에 다시 가게 된 계기였죠.”

- 악몽 때문에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고요?

“귀신의 실체를 느끼는 악몽이었어요. 그런 꿈을 매일 꾸다 보니 자다가 죽을 것만 같았죠. 살고 싶었어요. 마지막으로 어릴 때 교회에서 배웠던 그 전능한 하나님께 빌어보자고 생각하고 교회에 갔어요. 놀랍게도 교회에서 예배드린 날부터 악몽을 꾸는 일은 없어졌어요.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확신할 수밖에 없었죠.”

- 교회 나가니 인생이 확 바뀌던가요?

“아니요. 악몽을 꾸는 일은 없었지만, 술은 계속 마셨어요. 주먹싸움으로 경찰서에 드나든 적도 있습니다. 심지어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도요.”

- 왜 그러셨던 것 같나요?

“제 인생에서 복수해야 할 대상이 남아 있었어요. 아버지요.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요. 그 상처로 인한 분노가 쉽게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 끈질기게 위력을 발휘하는 상처,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성령께서 역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요. 저에겐 먼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하였어요. 성령께서 저를 낮추시는 그 감동으로 훈련이 되어간 듯해요. 역설적으로 내가 깎이고 낮아지면서 이겨낼 수 있었어요. 제일 먼저 술을 끊었고, 교회 개척 뒤에는 한 번도 큰소리를 낸 적 없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미움은 끝까지 저를 괴롭혔지만요.”

장 목사는 조각가다. 2016년부터 3년 연속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해 초대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가 만든 작품들은 꼭 그의 삶을 닮았다. 소재부터 그렇다. 버려진 철근 쓰레기. 고물상에서 가져다준 철근을 자르고 달구고 깎아서 작품을 만든다. 불꽃을 뿜으며 철을 다듬는 손길은 마치 술 취해 길거리에 쓰러진 그를 어르고 달래고 혼내어 여기까지 이끈 누군가의 손길을 닮았다. 교회 1층에 마련된 전시관에서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살폈다.

- 원래 미술을 좋아하셨나요?

“정말 좋아했어요. 사실은 미술대학에 가려고 막노동도 시작한 거였어요. 낮에 돈 벌고, 밤에는 미술 실습을 준비하려고 했지요. 술에 취해도 그림은 그렸어요. 밤새 그리기도 했고요.”

- 작품 수십 점을 갖고 다니며 ‘나의 사랑, 나의 십자가’ 순회 전시회를 하고 있는데요.

“밑바닥 인생을 구해서 이렇게 쓰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격을 다른 이에게도 전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미술 작품으로, 내 이야기를 십자가와 함께 담아보기로 한 것이죠. 글과 말이 아닌 직관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은혜가 있거든요. 그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 아픈 상처를 듣고 난 뒤라서 ‘스티그마’ 작품이 눈에 띕니다.

“2년 넘게 60여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쏠렸던 작품입니다. ‘스티그마’는 상처 입은 자국이라는 뜻이죠. 예수님께서 우리 때문에 채찍질당한 상처, 창에 찔린 구멍입니다. 바로, 사랑하다가 입은 상처지요. 우리의 상처가 예수님의 흔적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사랑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분노하며 미워하는 마음으로 상처를 받은 만큼 갚아주려고 하면 절대로 예수님의 흔적을 가질 수 없습니다.”

- 아버지로 인한 상처는 스티그마로 남았나요?

“목사가 되고 나서도 아버지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복수의 대상이었고, 무관심으로 복수를 실행에 옮기고 있었죠. 절대 용서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교회 창립 7주년 때 아버지가 처음으로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순간에 다 용서가 되더라고요. 이후 띄엄띄엄 나오시다가 세례도 받으시고, 지금은 제일 좋은 아버지이죠. 사례비 안 받는 아들을 위해서 용돈도 챙겨주고요.”

- 말로나 글로는 설명 안 되는 고백인데, 작품을 보며 이야기를 들으니 느낌으로 확 다가옵니다.

“십자가의 신비나 성령의 역사는 인생의 상처를 통해 볼 때 더 잘 보여요. 예수의 흔적, 스티그마를 가진다는 것은 사랑하라고 맡겨준 사람들이 말과 행동으로 나에게 상처를 준다 할지라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 트라우마에 가까운 상처도요?

“트라우마를 만든 상처를 흔적이나 추억이라고 하진 않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상처를 추억으로 만듭니다. 마음이 변화되고, 삶이 변화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랬어요.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 이 작품 ‘사랑으로 피어나다’는 그런 상처의 흔적인 십자가들이 모여 하트를 만들었네요.

“십자가로 이루어진 사랑 덩어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밑거름이 되어, 우리는 그것을 먹고 자라 사랑의 꽃으로 피어나야 하지요. 스티그마의 꽃을 피워내는 이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이고요. 그렇게 되면 교회는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사랑의 바다가 되겠지요. 아픈 날에 안기어 울 수 있는 엄마의 품처럼….”

어린 시절, 장 목사 어머니는 아들이 놀림당할까 봐 찌는 더위에도 늘 긴소매를 입고 다녔다. 손이 없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도시락도 싸갈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장 목사는 어머니를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삼남매를 키우며 밤낮없이 일했고, 협심증에 걸렸을 때도 홀로 묵묵하게 견뎠다. 무엇보다 그의 곁을 지켰다. 어머니 모습은 성령을 닮았다. 환경을 바꿔주지는 못할지라도, 늘 우리 곁에 머물며 우리를 위해 탄식하는 모습. 성령은 아픈 곳으로 들이닥쳐, 상처 난 구멍으로 드나들며, 아프게 사랑하는 법을 일러준다. 장 목사의 생애와 작품은 그 순간을 포착한다.

◇장동근 목사 약력= 기독교대한감리회 오병이어교회 담임목사.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초대작가. 개인전 15회. 복합문화공간 상상제페토 대표.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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