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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허락해준 열정 무대… 그녀는 늘 감사하며 오른다

윤복희 권사는 하나님을 전하는 통로로서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될까 봐 미니스커트는 물론 화려한 의상과 분장을 피한다고 말했다. 수원중앙침례교회(고명진 목사) 제공


사진=국민일보DB


윤복희 권사는 주님 부르실 때까지 무대에 올라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말한다. 수원중앙침례교회(고명진 목사) 제공


사진=국민일보DB


윤복희(74·뮤지컬 배우)는 지금도 무대에서 노래한다. 그의 무대 인생은 계산하기 쉽다. 나이에서 5년을 빼면 된다. 5살 때부터 무대에 올라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는 말을 배우기 전에 노래를 배웠고, 걸음마를 떼기 전에 춤추는 걸 보았다고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한다.

윤복희가 처음 무대에 오른 건 부모의 영향이었다. 그의 부친은 ‘부길부길쇼단’의 단장이자 원맨쇼의 일인자로 평가받는 윤부길씨다. 모친은 악극인 고향선씨. 그는 부친의 극단을 따라 전국을 떠돌아다녔고, 극장에서 젖을 뗐다. 자연스럽게 무대는 그의 운명이 되었다.

윤복희는 죽을 때까지 무대에 오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날도 그는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실 모 교회에서 간증과 찬양을 하는 자리였다. 기자는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향해 노래하고 연기하는 게 삶의 첫 기억이자 마지막 모습이길 바라는 인생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대기실에서 잠시 만난 그는 ‘미니스커트’ 이야기를 꺼내자,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질문으로는 윤복희란 인물을 조금도 알 수 없다는 듯 단호했다. “아휴, 사람들은 아직도 저를 미니스커트로 기억하더라고요. 저는 이제 무대 위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아요.”

윤복희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최초의 한류스타, 최초의 패션스타라는 버거운 이름이 항상 그를 따라다닌다. 티브이에서 보았던 것 이상으로 작고 가녀린 그는, 대중이 부여한 무거운 이름의 짐을 짊어지고서도 가벼워 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중이 부여한 이름 따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특히 ‘대한민국 1호 미니스커트’란 이름에는 질색했다.

궁금했다. 윤복희는 왜 더는 무대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을까? 그러면서 그는 왜 아직도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무대에 오르는 게 꿈이라고 말할까? 그것이 무대에서 태어난 사람의 운명일까? 정작 윤복희 자신은 대중이 준 이름이 아닌,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어 할까.



-왜 무대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대한민국 1호 미니스커트로 기억한다. 10대에 입었던 의상인데, 70대가 되어서도 사람들은 그 기억을 한다. 무대에서 입을 수도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리부터 본다. 미니스커트의 대명사처럼 되었으니까. 주객이 전도된다. 나는 무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통로이자 도구이다. 윤복희에게 관심이 쏠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미니스커트는 물론 화려한 의상이나 분장조차 피한다.”

-무대에 오르는 이유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서인가.

“1976년부터 쭉 그래왔다. 사람들은 윤복희 하면 대중가수로 오해한다. 나는 세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사람들이 돈을 많이 주겠다며 가요를 부르자고 찾아왔지만 다 거절했다. 관심조차 없었다. 나는 하나님을 전하는 일에만 관심 있다. ‘여러분’만 해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가요로 알고 있다. 아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내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옮겨 적은 노래다. 가사를 천천히 음미해 보면 알 수 있다. 가요에서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이런 가사는 가능하지 않다. 여기서 ‘나’는 하나님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씀이다.”

- 1976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왜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에서 하나님을 전하는 도구로 변화를 자처하나.

“후두암 진단을 받았다. 대한극장에서 공연할 때였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와서 병원에 가 보니, 목에 엄지손가락만 한 혹이 있다고 했다. 수술하더라도 노래는커녕 목소리를 잃게 될 거라고 했다. 실의에 빠져있던 중 하나님을 만났다. 아직도 날짜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해 2월 27일 아침이었다. 타고 가던 차가 사고가 나서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돌았다.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처음 들었다. “겁내지 말라, 이건 사고가 아니다.” 다친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 사건 전에는 하나님을 전혀 몰랐다. 하나님을 만난 게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거리에서 보는 사람마다 껴안았다. 당시 전도사였던 고 하용조 목사를 찾아가 성령 체험한 일을 말했다. 그때부터 3년 동안 하 목사와 일대일 성경 공부를 했다. 공부를 마치면 교회를 찾아다니며 찬양을 불렀다. 나오지 않던 목소리가 나왔다. 수술해야 한다고 했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후두암이 싹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한다.”

-그 방법이 뮤지컬인가.

“사람들은 TV에 나오지 않으면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활동을 멈춘 적이 없다. 77년부터 지금까지 100여 편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특히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같은 뮤지컬은 81년부터 2006년까지 막달아 마리아 역할로 꽤 오랫동안 출연했다. 예수와 유다 역할은 다 바뀌었지만, 다행히도 성서에는 마라아의 나이가 나오지 않는다. (웃음) 30대부터 환갑이 넘을 때까지 마리아 역할을 했다. 지금도 교회 집회에 갈 때면 꼭 이 역할을 연기한다. 예수가 어떻게 죽었고, 십자가에 왜 못 박힐 수밖에 없었는지 내용을 담은 노래를 부른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다.”

- 좋아하는 찬양이 궁금하다. 교회 집회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나.

“찬송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좋아한다. 내가 성령을 체험하고 처음 불렀던 찬송이다. 그때도 좋아했고, 지금도 가장 좋아한다. ‘은과 금 나 없어도’ ‘내게 강 같은 평화’ 같은 복음성가도 좋아한다. 내가 만든 곡도 많다. 말씀을 배우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찬양으로 썼다. <여러분>도 그렇게 나온 곡이다. ‘사도행전’이라는 곡이 있는데, 12년이나 걸려서 만든 곡이다. 교회 집회에 가면 뮤지컬 곡으로 시작해서 기존 찬양곡과 내가 만든 찬양을 부른다.”

- 언제까지 무대에서 노래하고 연기할 생각인가.

“하나님이 날 데려가실 때까지. 하나님이 날 데려가실 때까지 쉬지 않고 무대에 오를 거다. 내가 무대에서 노래하고 연기할 수 있는 힘은 성령님으로부터 나온다. 그분이 주신 열정이 나를 이끈다. 내 힘으로 버텼다면 예전에 그만두었을 거다.”

-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전하는 통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에게는 다른 이름이 필요 없고, 다른 이름을 바라지도 않는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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