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사-비은사주의 약점 극복위한 제언
현대를 위한 성령론/크레이그 키너/이용중 옮김/새물결플러스
성령 체험 없이 성령론을 말할 수 있을까. 이때 ‘성령 체험’의 의미는 은사지속론을 지지하는가 은사중지론을 지지하는가에 따라 제법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현대를 위한 성령론’(새물결플러스) 저자 크레이그 키너는 스스로 은사주의자라고 밝히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고, 여러 초자연적 은사를 체험했다고 말한다. 성경 속 모든 영적 은사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목차에 나오는 ‘성령의 음성 인식하기’, ‘영적 은사는 오늘을 위함인가?’, ‘성령과 구원’, ‘방언과 성령’ 등은 은사지속론자와 은사중지론자 사이에서 격돌하는 논쟁 주제들이다. 이를 다루면서 저자의 체험이 드러나지만, 체험만 앞세우지 않는 것이 이 책 특징이다. 관련 성구를 일일이 언급하며 논증한다.
거침없이 경험을 이야기하다가 성경으로 뒷받침한다. 저자는 신약 배경사와 주석 분야에서 잘 알려진 전문 학자이기 때문이다. 한국 번역서로 ‘IVP 성경배경주석: 신약’(IVP), ‘요한계시록 - NIV 적용주석’(솔로몬) 등이 있다. 저자는 자신의 성령 체험에 도취되지 않고, 스스로 체험을 검토하며 한계를 정확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각 이슈에 대해 개혁주의·성결교·오순절파 등에 속한 학자들이 어떤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지, 자신과 상반한 견해까지도 공정하게 검토하려 한다. 간증과 성경주석이 섞여 있는 독특한 책이다.
저자는 은사중지론자를 향해 은사지속론자는 은사 체험 하나만 제시해도 되지만, 은사중지론자는 은사지속론자가 말하는 사례를 전부 부정해야 그 주장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은사중지론을 계속해서 반박하지만, ‘은사주의자가 은사주의자를 위해 쓴’ 뻔한 책은 아니다.
번영신학과 성경보다 체험을 우위에 두는 태도를 버리라고 은사지속론자들에게 주문한다. 가짜 은사와 영적 엘리트 의식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성령의 역사의 핵심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변화된 마음이다.” ‘은사주의자들에 대한 은사주의자의 비판’, ‘은사주의의 과도함에 대한 보다 공정한 비판’ 등을 정리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교회의 연합이다. 은사주의 교회가 비은사주의 교회를 무조건 포기해서는 안 되며,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로 교제하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각자의 덕을 세우는 데 힘쓰고, 사랑·화평·오래참음 등 열매를 더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를 한 몸으로 만드시는 한 성령께서 우리에게 한 몸을 섬기고, 함께 세상에 복음을 전하며, 함께 주님을 예배하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실제로는 성령을 모시고 있다는 우리의 ‘은사주의적’ 주장과 ‘비은사주의적’ 주장은 모두 가치가 없다.”
은사주의자가 썼지만, 자신과 다른 견해를 충분히 다루고 연합을 이야기하며 일종의 ‘균형’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은사주의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도 고스란히 짚고, 성령 체험이 단순히 무질서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도 드러낸다.
▒ 성경과 성령은 공생관계… 교회연합 강조
성령과 신앙/잭 레비슨/홍병룡 옮김/성서유니온
‘성령과 신앙’(성서유니온선교회)도 ‘균형’을 이야기한다. ‘성령과 신앙’의 핵심 주장은 ‘미덕, 황홀경, 지성의 통합’이 성령의 역사를 다루는 올바른 태도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령 이해가 유대교의 성령 이해 연장선상에 있다고 상기하며, 성경과 성령은 공생관계라고 말한다.
저자인 잭 레비슨은 신구약성경과 고대유대 문헌, 그레코로만시대 문헌에 나타난 ‘영’(spirit) 연구 권위자다. 이 책에서 성경 인물의 역사성, 신약 문서의 신빙성 문제는 관심 사안이 아니다. ‘성령’에만 초점을 맞춰서 이스라엘, 초기 유대교, 초기 기독교 텍스트를 면밀하게 살핀다.
주장은 크게 세 가지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받는 하나님의 영은 미덕과 배움을 고취한다. 성경은 황홀경과 이해력의 공생을 보여 준다. 성령의 임재는 영감 어린 성경 해석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들을 성경과 여러 문헌을 사례로 들이밀면서 입증한다.
방언·예언 등의 황홀경을 향한 갈망은 그 자체만으로는 성경적이지 않다고 지적하는 대목이 인상 깊다. 오히려 그리스·로마·유대교 문헌에서 황홀경의 특징이 많이 나오고, 성경은 상대적으로 황홀경을 억압한다고 볼 정도로 적게 다룬다. 황홀경을 다룰 때는 이해력 문제가 같이 등장한다.
이 책은 ‘황홀경의 제자리 찾기’를 시도한다. 초대교회는 황홀경을 체험했을 때 반드시 지적이면서 공동체적인 숙고를 치열하게 거쳤다. 성령 체험인지 아닌지 검토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황홀경에 압도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다. 성경은 단순한 체험의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황홀경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성경 메시지가 아니다. 신약성경에는 오순절 사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등장하는데, 그 밑바닥에는 황홀경 체험이 강력하게 들끓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달렸다.
초대교회는 확실히 황홀경에 열려 있었지만 아주 치열하게 논쟁했다. 이방인을 향해 교회의 문을 열게 되는 예루살렘 회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며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은 교회의 방식이 아니었다. 만만찮은 갈등 해소 작업이 있었다.
사도행전 15장 28절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가 예루살렘 회의가 내린 결론으로 제시된다. 단순히 ‘성령은’이 아니라 “성령과 우리는”이라고 표현한다. 성령의 영감과 인간의 노력이 함께 제시된다. 인간의 체험, 열띤 논쟁, 치밀한 분석을 통합해 공동체가 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결론부에는 ‘성령론의 미래를 위한 의제’가 제시된다. ‘현대를 위한 성령론’처럼 분열돼 가는 교회에 공통적인 자리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담겼다. 양극단의 특징을 없애지 않고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성경과 영’, ‘황홀경과 건덕’, ‘영감과 조사’를 연결해 다양한 그리스도인을 하나 되게 하는 성령론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임스 스미스의 ‘습관이 영성이다’(비아토르)는 신앙 형성을 위한 지혜의 원천을 풍성한 예배의 유산에서 찾는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인을 만난다. 예배는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가능하다. 기도와 찬양, 설교와 봉헌, 세례와 성만찬은 하나님의 성령이 교회를 통해 이뤄 가는 성령충만한 실천이다. 교회는 매번의 예배를 통해 어떤 성령론을 지향해야 할까.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