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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담양 목사의 사진과 묵상] 썩어질 세상 유익 좇지 말고 예수만 바라보라

지난달 5월 경기도 양평에서 찍은 초막 사진.




먹잇감을 주시하는 날카로운 눈동자, 바람에 흩날리는 사자의 갈기가 작렬하는 태양 같습니다. 밀리지 않겠다는 듯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전날의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일심으로 쳐다봅니다. 몇 초간의 침묵, 그 참을 수 없는 긴장감을 볼 때마다 나는 참 즐겁습니다. 깨끗이 씻긴 그릇이 놓여지는 순간, 사자의 갈퀴처럼 달려드는 손가락들. “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블루베리다!” “언니! 그만 좀 먹어! 나 어제 못 먹었단 말이야!” “메롱! 언니가 먼저 먹을 거다.” “으앙, 엄마. 언니가 다 먹었어!” 집에서 펼쳐지는 손녀들의 풍경입니다.

상상이 되시지요? 오늘도 사자는 승리했고 동생 호랑이는 쓸쓸하게 등을 돌립니다. 제가 특히 편애하는 손녀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아니오. 다 같은 사랑입니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아쉬워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이익을 누리는 권리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억울한 피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편애 때문이 아니라 언니였기 때문이고 과일을 짚는 손이 동생보다 조금 더 컸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는 저 태초에 만물이 창조하시는 영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어진 후로 사람들은 ‘이해(利害)’를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제까지 손을 잡고 있던 친구였다 할지라도 등을 돌리고, 나의 삶에 조금이라도 피해가 된다면 모든 사람이 정의라고 말해도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믿음 생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은 언제부터 나의 귀한 시간을 내어 하나님을 만나주는 것이 돼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에 소원하던 것들, 계획하던 목적들이 잘 이루어지게 해주시면 좋은 하나님이요, 내 삶속에 고난이 가득하면 불의한 하나님이 돼버립니다. 과연 나의 이해를 헤아려주는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일까요?

2000년 전 이스라엘 변화산이라고 불리던 곳에 우리 예수님과 제자들이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는 허름한 옷이 아니라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시던 그 영광으로 옷 입으셨습니다. 주님 곁에는 출애굽의 리더 모세와 불병거를 타고 하늘 초장에 이사갔던 엘리야가 서 있습니다. 보는 사람에게는 정말 멋진 풍경이지요. 그래서 베드로는 박수를 치며 주님께 말합니다. “선생님! 이 얼마나 멋진 풍경입니까? 옛날 전설처럼 들어왔던 모세와 엘리야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세 분을 위해 초막을 지을 테니 계속 여기 계시면 어떨까요?”

겉으로 보면 주님과 두 믿음의 영웅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사람들로부터의 인기와 세상적인 명예를 얻어보려는 베드로의 이해관계 속에서 태어난 어리석은 생각일 뿐입니다. 이런 베드로의 심중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신비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세상적인 유익이라는 과일을 먹으려고 손을 내밀던 베드로에게 하늘 아버지께서는 부드럽게 타이르셨습니다. “세상 유익을 쫓지말고, 나의 기쁨이 되는 예수만 바라보아라.” 그리고 훗날 베드로는 두 손 가득 쥐고 있던 세상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주님 앞에 드리는 사람, 예수로 삶의 모든 것을 해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해는 당신 안에 있지만 당신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흘러가는 물을 잡는 아쉬운 손가락처럼 그렇게 흘러갑니다. 해석은 당신 밖에 있지만 해석하시는 이는 당신을 항상 생각하고 배려하십니다. 야곱을 들어 이스라엘이 되게 하시고,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며, 사울의 겉옷을 벗겨 복음의 나팔을 부는 바울로 바꿔주신 주 예수는 오늘도 당신의 기대와 소망이 담겨있는 저 썩어질 초막들 사이에 서 계십니다. 나의 기쁨을 간구하던 삶을 멈추십시오. 하늘 아버지의 기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 안에서 당신의 오늘을 해석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럴 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하나님 안에서 선이 되고 있다는 진실이 이해되고 해석될 것입니다.

빈 그릇 앞에서 오늘도 패배자의 심령으로 울고 있는 작은 손녀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귀에 속삭여 주었습니다. “할머니가 더 맛있는 과일 사서 너만 몰래 줄 테니까 울지 말고 내일까지 기다려 줄 수 있겠니?” 펑펑 울던 손녀는 이내 방긋 웃으며 저와 새끼손가락을 꼭 걸었습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습니다. 어제의 실패를 곱씹으며 슬피 우는 인생, 비어있는 초막을 바라보며 한숨 짓던 삶을 멈추고, 당신 앞에 서 계신 주님의 품에 안겨보지 않겠습니까? 따스한 배려가 그곳에 있습니다.

“밤하늘 잠시 빛나는 별똥별에게 소원을 빌기보다/비록 앞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 서로 마주 손잡고/그 따스함을 느끼며 사랑을 노래하리라.”(전담양 목사의 ‘한밤의 소망’ 중에서)

<전담양 고양 임마누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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